정양수 취재부장

대한민국의 근본적 정치 처방이나 개혁은 요원하다.

촛불정신 속에는 다양성이 내포되어 있다. 이것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언젠가는 이 다양성과 포용성에 각 단위 민주주의의 융합과 하강, 상승이 반복될 수 있는 '소통의 민주주의'가 실현될 것이다.

촛불시대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정치체제가 완숙기에 접어들면 또다시 대한민국 정치는 변화의 시간으로 갈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여전히 50년대부터 시작된 구태 정치구도가 남아있다.

그리고 우리는 한시대를 더 넘어서야 한다는 점을 이번 6.13 지방선거를 통해 배우고 있고 다시 잊어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하고 있다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6.13 지방선거의 최대 화두는 지방자치였다(당연히 과거형이다). 그리고 연방제적 수준 지방분권을 외치면서 호기롭게 개헌안도 던져봤다. 너무 잘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은 사실 지방분권이 무언인지를 정확히는 모르는 듯 싶다.

법조인인 만큼 명확하게 명문화는 할 수 있지만, 이 연방제 수준의 지방자치에 담아내야할 무언가를 찾지 못한 것이다. 최소한도로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개헌이 아닌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담아냈어야할 지방분권의 미래상들이 실험적으로 가미됐어야 했던 것이다.

이 글이 과거형인 이유는 본선 D-29일 동안 우리는 과거보다 더 혐오스럽게 느껴지는 민주주의를 보게 될 것으로 짐작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민주주의인 것이라는 것을 '시대적 착오'라고 외치는 언론도 혐오스럽다. 이 글을 쓰는 기자도 혐오스럽다.

하나 확실한 것은 그 언론들 조차도 이 정치가 변화할 수 있는 어떤 단초의 지적도 할 수 없는 적폐라는 점이다. 언론 기사의 출고가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역량 속에 놓어있지 않는데 우리는 그냥 거슬린다고 매도한다.

이번 선거기간 동안 내가 보아온 17년의 기득권 언론들이 지방선거를 바라보는 시간은 여전히 멀구나였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정론직필', '문화창달'에 나서겠다고 선언한다. 정말 우리는 그런 시간대에 놓여있을까? 그렇지 않다.

"앞으로 기사를 많이 쓰게 될 것 같습니다"는 계획에 "그러다 소송걸려"라고 충고가 오는 것을 보면 분명 소송이 언론의 자유보다 위가 아닐가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무겁고 무섭네요..."라고 말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언론이나 기존정치권 모두,  우리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고민하거다 길을 내야 한다고 나설 용기가 없는 것이다. 어느 누가 광역단체장이 되든, 어느누가 광역의원이 되든, 어느 누가 기초의원이 되든 상관없기에….

어차피 정치권은 촛불시대의 진정한 정치를 실현시킬 수 없다. 시작은 2년후의 총선부터다. 그때 실패하면 6년의 총선이다. 수천만명의 국민의 가슴 속에 담겨져 있는 민주주의의 다른 모습은 삶의 현장과 시간이 투영되야 가능한 것이다.

입에 침을 바르고 외치는 정치인들의 그 멋진 말들은 언제나처럼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현실에 민주주의가 깃들려면 아주 오래걸린다. 삼김시대에서 벗어나 고 노무현의 시대에 여전히 우리가 살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정치 체제 속에서 고민하고 답을 찾아내야 하는 것은 또한 정치권의 숙명이다. 그리고 답은 몇년 뒤, 또 몇년뒤 계속해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숙해질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기는 하다.

6.13 지방선거 공천 시즌에서 많은 당들은 숨어있는 '경선 룰'에 대한 불만을 읽어냈을 것이다. 국민들에게 보여주기식 공천이 아닌 민주주의 정당으로서 당원 정치의 범위를 넓히고 공감대를 확산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덧붙인다면, 이번 지방선거는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네거티브의 패러다임을 적용하기 힘든 점이 그것이다. 다행히 남경필 경기도지사나 이재명 전 성남시장은 유능한 지방자치단체장의 한 사례로 꼽힌다.

누가 잘났고 못났고라는 인물론적 관점이든, 어느당이 옳고 어느당이 그른지에 대한 당색이 아니더라도 두 사람은 충분히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나갈 필요가 있고 지든 이기든 서로를 인정해야 한다.

두 인물의 지지층이 상당부분 엇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쟁은 이기기 위해 하는 것이 맞지만, 과정의 패배 또한 교훈이 되는 것이다. 기자는 네거티브를 하지 말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이번 지방선거는 대한민국 지방정치가 얼마나 옹색한 철학 속에서 피어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 토대 속에서 4년 연임의 대통령제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너무도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다.

결국 답은 유권자, 그리고 촛불집회에 나섰던 어린 친구들이 어른들을 대신해서 미래세대에 답을 찾아줄 것이다. 하나하나 세포같은 국민들은 하나하나 다른 포지션에서 판단을 내리고 투표해야 한다.

그런데, 과거처럼 하나의 포지션에서 누가 나오든 상관없이 투표가 진행될 것 같은 우려를 낳고 있다. 이는 다양성의 실종이며 지난 몇년간의 지역주민의 봉사자들에 대한 예우가 실종된 것이다.

반면, 그 원인을 제공하는 쪽은 오히려 자유한국당이다. 만약 한마디 한다면, "1월부터 매일 대한민국 국회 앞에서 사죄의 출근 인사를 했을 것이다"고 농담처럼 한말이 그 진실이 아닐까 싶다.

어째든 이번 선거에서는 이런 사죄의 의미를 되새길 여유는 없어졌다. 마음껏 네거티브에 나서라. 그리고 다시 살아서 서로 칼을 맞댈 수 있는 친구가 되어라. 좋은 정치인은 쉽게 태생되지 않는다.

유권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지방자치가 왜 필요한 것인지 지역의 대표들이 왜 필요한 것인지 말이다. 20년 공을 들인 직장에서 유행이 바꿨다고 모든 것을 갈아치우는 것이 인생에 맞는 답인가로 반추해봐야 한다.

물론 보수계열의 단체장들이 속한 정당에 면죄부를 줄 필요는 없다. 정치적으로 필요한 부분인지, 아니면 생활에 필요한 부분의 정치인지를 나누고 고민하지 못하는 정치 풍토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치의 뒤쳐짐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정치란 무엇이고 우리의 삶의 현장은 어디이고, 이곳에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실현되야 대한민국 전체가 건강해질 수 있나라는 고민부터다.

내가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곳을 쓰다듬어주는 공무원의 수장을 고르는 선거다. 이것조차 모르고 그 당이 싫어라고 한다면, 잘못된 정당 정치의 시스템에 우리 자신을 그냥 녹여내는 구태의 유권자일 뿐이다.

 

/글=정양수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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