뤽 베르송 감독의 공상과학 스릴러 <루시(Lucy)>가 개봉 첫주(7월 25일 개봉) 박스 오피스 1위로 $44밀리언 수익을 냈다.

 

<레옹>의 뤽베르송 감독, 최근 주가를 올리는 여배우 스칼렛 조한슨, 그리고 헐리웃의 간판스타 모간 프리만때문이 아니라, 오직 대한민국 배우 최민식이 출연한다는 이유로 극장을 찾았다.
 

▲‘루시’와 '설국열차'가 상영 중인 부륵클린 파크슬롭 지역의 파빌리온 극장


영화 내용인즉, 타이완에서 활동하는 갱단 두목 미스터 장(최민식 분) 은 루시(스칼렛 조한슨 분)를 포함 몇몇 사람의 멀쩡한 배를 갈라 마약을 감추는 시술을 한 뒤 해외로 밀반출하려 한다.

 

루시가 갱들한테 갇혀 있는 동안 한 졸개에게 복부를 걷어차여, 그 안의 마약이 터지면서 체내로 흡수 돼 수퍼우먼으로 변해 갱들을 소탕한다는 이야기이다.

 

스토리 중심축에 노만 교수(모간 프리만 분)는 마약이 두뇌 신경세포에 미치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루시와 함께 갱을 추격하는 경찰(아무르 웨이크드 분) 사이에 핑크빛 무드도 형성된다.
 
“보통의 사람은 두뇌 용량의 10%만 사용한다. 그녀가 100%를 사용한다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상상해 보라. “ 

영화 포스터에 나와 있는 <루시>의 카피 문구이다. 이 카피와 영화 내용의 과학적 근거를 놓고 <타임>의 제프리 클루거는 “사람들은 10%보다 훨씬 많은 두뇌를 사용하며 카피문구는 잘못된 정설 (common fallacy)”이라고 조목조목 반박한다.
 

영화는 그냥 영화다. 공상과학 영화 줄거리에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하더라도 여름시즌 오락 영화라면 그냥 콜라에 팝콘을 먹어가며 즐기면 그뿐이다.

 

그런데 이야기 전개에 논리가 부족하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엔터테인먼트>지는 영화점수에 C+를 주었다.
 
“나쁘지 않아!”
영화가 끝나자 옆자리에 있던 관객이 여자 친구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멋진 발차기와 권총으로 악당을 제압하는 스칼렛 조한슨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는지도 모르겠다.

 

▲악당 두목으로 분한 최민식 -출처: 유튜브 켑쳐

 

통신원이 보기에도 스칼렛 조한슨은 독특한 분위기와 훌륭한 경력을 갖춘 헐리웃의 유망주임이 틀림없다. 그래도 통신원에겐 그보다 영화 속 최민식에게 관심이 더 간다.
 
방금 피범벅 공사를 끝내고 싸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최민식의 첫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화면을 압도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얼굴과 전체 분위기에서 아우라가 생겨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는 아름답게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전체 스토리 라인에 있어서도 주요한 배역이고 출연 분량도 꽤 많다. 여기까진 좋았다.
 
최민식은 극 중 대사를 한국말로 한다. 최민식의 오른팔 격인 부하 역시 한국말로 대사한다. 그리고 나머지 졸개들은 라티노, 아시안, 흔히 백인 중심 사회에서 ‘마이너리티’로 불리는 소수민족 출신 배우들이다.

 

한국의 조폭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듯 갱들의 대사라는 게 대충 “처리해!” “네, 형님!” 이런 식으로 고만고만한 대사들이 전부이다. 물론 최민식의 대사는 스토리 전개에 주요한 지점을 차지하기에 그 이상의 분량이 있었다.

 

 하지만 최민식의 한국말 대사는 감칠맛이 부족했다. 대사를 위한 대사 같은 느낌이다. 시나리오가 불어에서 영어로 그리고 다시 한국말로 번역되는 과정이 있었는지(통신원 추측임) 입에 달라붙는 대사가 아니다.

 

통신원을 황당하게 만들었던 건 그나마 한국말 대사에 영어자막이 아예 없다는 사실이었다.
 
미국 관객들은 최민식의 대사를 어떻게 이해하라는 것일까?
 
통신원은 당연히 한국말 대사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나머지 미국 관객들에게는 최민식이나 나머지 갱들의 대사는 그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대사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영어 자막이 없었던 게 아닌가.

 

실제로 그 대사를 놓치고 가더라도 영화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마치 동남아나 라티노 갱과 싸우는 백인 영웅 영화에서 그쪽 현지인 대사 자막이 세세하게 나오지 않아도 극의 흐름상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설정이 타이완에서 활동하는 갱이다 보니 관객들은 최민식의 한국말도 역시 그저 ‘치노(중국인을 비하한 말)’가 하는 말일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스크린에 나오는 모든 오브젝트는 말을 한다. 대사는 말할 것도 없고 소품, 색깔, 의상, 음악, 음향 그 모든 것이 캐릭터를 살려 영화 주제를 향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차라리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한 대사라면 다 덜어내고, 최민식의 ‘룩( look)’ 자체로 그의 캐릭터를 만들었으면 어떠했을까? 그 예전 <모래시계>의 이정재나 <나쁜남자>의 조재현처럼...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돈 아깝다는 생각보다 칸 영화제를 빛낸 배우, 대한민국 최고 배우 최민식이 객지에서 홀대를 받았다는 생각에 괜스레 화가 났다. 기사를 위해 자료를 찾는 중에도 최민식에 대한 언론 반응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상업영화의 가치를 평가할 때, 흥행성적은 다른 어떤 평가보다 우위를 점한다. 그런 면에서 최민식의 헐리웃 데뷔는 출발이 훌륭하다. 시작이 반이고 첫술에 배부를 수 없기에 앞으로 그의 행보를 기대한다.
 
한국어판 월스트릿 저널은 영화 관련 기사를 아래 문장으로 시작했다.

“월요일 아침, 한국 언론은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루시>가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조명했다. <루시>는 한국 배우가 악역으로 등장하는 스릴러물이다.”
 
그런데 같은 기사의 영어판 제목은 “한국인 ‘루시’에서 지방배우가 하는 역할(local actor’s role)을 축하하다: South Koreans Celebrate Local Actor’s Role in Lucy” 이다.

 

한국어판의 첫 문장에서는 ‘여기서 지방배우들이 하는 역할인 악당 두목’을 생략한 체 내보냈다. 원문: “ It’s Monday morning and South Korean media is celebrating top spot at the U.S. box-office for “Lucy,” a thriller known here for a local actor’s role as the main villain.”
 
이것이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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