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2.7%로 하향 전망했고, 한국은행도 2015~2018년 잠재성장률을 3~3.2% 정도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 전망을 어떻게 보는지요.

“지금 세계 경제 전체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특히 대외의존도가 높아 세계 경제 불황의 영향을 더 받습니다. 또한 국내적으로 정치·사회적 제약 때문에 일자리 창출도 부족하고, 경제성장이 더 더뎌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걸 잘 해소해나간다면 새로운 경제 활력을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사회적 제약을 극복하고 필요한 개혁을 해낸다면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4~5년 내에 1~1.5%포인트 정도 올리는 것은 힘들지만 가능하다고 봅니다.”

사공일(77)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경제 석학이자 경제 관료의 ‘전설’이다. 전두환정부에서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과 재무부 장관을 지낸 데 이어 노태우정부 초대 재무부 장관을 지냈다. 김대중정부에서 대외경제통상대사, 노무현정부에서 대통령 경제원로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명박정부에서는 대통령 경제특별보좌관, 대통령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을 역임했다.

지난 한 해 박근혜정부의 경제 성과는 어떻다고 보십니까.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여타 OECD 국가들에 비해 선전했다고 봅니다. 단지 ‘국회선진화법’과 비협조적인 정치권 등의 여건 때문에 정부의 ‘4대개혁’ 과제가 제대로 추진되지 못해 더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경제를 살릴 새로운 성장동력도 눈에 띄지 않습니다.

“새로운 성장동력은 정부가 직접 만드는 게 아닙니다. 기업인들의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면 시장 기능에 의해 저절로 생겨납니다. 기업인들이 최대한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줘야합니다.”

현재의 경제 위기를 타개하고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 정부가 ‘경제개혁 3개년 계획’과 4대(공공 ·노동 ·교육·금융) 구조개혁을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4대 구조개혁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잡은 건 적절하고, 방향을 잘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잘 추진돼야 합니다. 한 번 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 추진해나가야 합니다. 특히 교육개혁과 노동개혁이 중요한데, 노동개혁이 현재 잘 추진되고 있지 않아 걱정입니다.”

노동개혁이 더딘 이유는 무엇입니까.

“노동개혁이 왜 근로자와 기업에 함께 도움이 되는지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합니다. 현재 임시직과 비정규직이 빠르게 늘어나는 것은 산업구조가 바뀐이유도 있지만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는 탓도 큽니다. 회사 입장에선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으면 정규직을 덜 채용하고 비정규직을 쓰거나, 아예 외국에 공장을 짓게 됩니다. 특히 청년과 미숙련 근로자들의 취업 기회는 더욱 줄어들게 됩니다. 결국 노동시장 경직성으로 손해를 보는 것은 근로자와 우리 국민 모두입니다.”

노동개혁 자체가 청년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말씀인가요.

“개혁을 미루면 가장 큰 부담은 젊은이들에게 갑니다. 젊은 세대는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하고 미숙련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으면 그들은 일자리를 얻기도 힘들고, 얻어도 비정규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젊은이들을 위해서라도 노동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합니다.”

선진국의 노동시장은 어떤가요.

“독일이 좋은 사례입니다. ‘라인 강의 기적’을 일으켰던 독일도 1990년대 들어 ‘유럽의 병자’라 불릴 정도로 경제가 침체됐습니다. 주요 원인이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과도한 사회복지였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03년 슈뢰더 총리가 노동시장과 복지제도의 일부를 개혁했습니다. 그는 노조를 지지 기반으로 하는 사회민주당 출신이었지만, 독일 경제 활성화를 위해선 이 길밖에 없다고 믿은 것입니다. 기민당 메르켈 총리로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이 정책이 계속 추진된 결과 독일경제가 되살아나 현재는 유럽에서 가장 잘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배울 점입니다.”

노동개혁의 전제조건이 있다면 뭘까요.

“‘근로자를 보호하되 일자리는 보호하지 말라’는 유명 경제학자의 경구가 요체입니다. 기존 일자리는 기술발전에 따라 계속해서 없어지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사라져야 할 일자리를 보호하려는 것은 근로자 자신과 기업, 경제 전체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만 국가는 일자리를 옮겨야 하는 근로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면서 훈련과 재교육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에 재취업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처럼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면서 노동시장을 유연화해야 합니다.”

경제활성화법과 노동개혁 관련법이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대통령이 직접 입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는데요.

“정치권이 안 움직이니까 대통령이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겠다는 것인데,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싶습니다. 정치권과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을 직접 설득해서 국민이 필요한 개혁을 지지하고 정치권과 함께 이해당사자들에게 압력을 넣을 수 있도록 하는 대국민 소통 노력을 더 강화해야 합니다. 정치권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표심이고 여론 아닙니까.”

교육개혁은 어떻습니까.

“금년 초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의 주요 화두가 된 제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우리에게 시사성이 아주 큰 대목이 있습니다. 현재의 초등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갖게 될 일자리 중 65%는 지금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새로운 일자리일 거라고 합니다. 이런 새로운 일자리에 맞고 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낼 인력을 길러낼 수 있도록 교육개혁이 이뤄져야 합니다.”

정부는 교육개혁의 하나로 자유학기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끼’를 살려주는 건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더 높은 차원으로 진전시켜가야 합니다. 지금 같은 산업화 시대의 교육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야 합니다. 주입식 암기교육이 아닌 융합과 창의 쪽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평생교육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사무자동화와 로봇 기술의 발전 등으로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실업자가 되지 않도록 교육과 훈련을 해야 합니다. 이젠 대학 졸업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평생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런 것도 포함해 교육체제, 교육 방법, 교육 내용 등 새로운 발상에서 개혁이 추진돼야 합니다.”

4대 개혁 외에 경제 발전을 위해 정부가 추진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모든 분야에 걸쳐 상존하는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 기업이 투자하기 좋은 여건을 만드는 일이 필요합니다. 교육, 문화, 관광, 물류, 금융, 의료보건 등 각종 서비스산업 분야에 좋은 새 일자리가 생길 수 있는데, 필요 이상의 규제가 많아요.”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당장은 국민에게 인기가 없는 정책이라도 꼭 필요하면 대국민 소통을 통해 해내야 합니다. 역사의 평가를 받겠다는 신념으로 개혁을 해나가야 합니다. 국민 모두가 경제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인기영합적인 정치적 수사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개혁이 왜 서민과 약자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쉬운 말로 충분히 설명하는 정부의 노력이 중요합니다. 이 부분이 미진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흔히 ‘소통’ 하면 대통령의 소통만을 이야기하는데, 더 중요한 건 장관부터 각 부처 실무자에 이르기까지 전 정부 차원의 대국민 소통 노력이 강화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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