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엽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이사

마흔 살 안팎, 때로는 50대까지를 아울러 ‘중년(中年)’이라 한다. 청년(靑年)에서 노년(老年)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란 뜻이다. 중년은 청년시절의 끝에 해당한다. 마흔을 넘어 중년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젊은 시절 가졌던 꿈과 목표는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성공과 성취의 한계를 분명히 깨닫게 된다.

 

중년은 또한 노년의 시작이기도 하다.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면 주름진 얼굴에 희끗희끗한 머리의 익숙하지 않은 자신을 만나게 된다. 노안으로 눈앞이 침침해지면서 이제 돋보기의 도움 없인 책과 신문을 보려면 눈살을 찌푸려야 한다. 별달리 이룬 것도 없이 확연히 늙어버린 자신을 발견하면서, 인생이 허무하고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처럼 40대에 접어들면서 겪는 삶의 허탈감을 ‘중년의 위기’라고 한다.

 

 

이착륙이 동시에 이뤄지는 활주로처럼 분주한 중년

 

중년의 위기는 ‘일’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평균 55세를 전후로 주된 직장에서 퇴직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년에 접어든 직장인에게 남은 시간은 길어야 10년 남짓 밖에 되지 않는다. 노후준비를 든든히 해 뒀다면 그나만 다행이지만, 지금껏 월급 받아 자녀교육비와 생활비 대느라 노후대비 저축은 언감생심 생각도 못해본 입장에선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결국 평안한 노후를 위해서는 가능하면 오래 일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준비를 해야한다. 그래서 중년은 바쁘고 혼란스럽다. 당장 다니는 직장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며 성과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년 후 시작할 새로운 일에 대한 준비도 소홀히 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마치 착륙과 이륙이 동시에 이뤄지는 활주로와 같은 것이다.

 

 

 

당신의 인생 활주로는 어떤가?

마지막 비행을 끝내고 격납고로 향하는 비행기만 있는가,

아니면 정비를 끝내고 새로운 이륙을 준비하는 비행기도 있는가?

 

 

샐러리맨에게 승진과 월급 빼고 남는 것은?

 

새로운 이륙을 준비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돈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은 ‘미생(未生)’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드라마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샐러리맨에게 승진과 월급 빼면 남는게 뭐가 있냐”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말이다. 

 

 



 

하지만 직장생활에서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사람이다.  

 

농경사회에서와는 달리 산업사회에서는 인간관계가 직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일을 그만둔다는 것은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맺었던 인간관계의 끈을 놓는다는 의미이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는 많은데... 

 

스마트폰을 꺼내 ‘연락처’에 등록된 이름이 얼마나 많은지 한 번 확인해 보자. 사람마다 차이는 날 순 있지만 작게는 수십 개에서 많게는 수백 개가 넘는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연락처에 저장된 이름과 전화번호를 다음 기준에 따라 크게 셋으로 나눠 보자.

 

 

 

첫번째 집단에는 ‘가족과 친족’과 같이 혈연으로 맺어진 사람의 이름을 넣는다. 친구와 동창, 동호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두 번째 집단으로 분류한다. 마지막으로 직장동료와  업무로 알게 사람의 이름을 세번째 집단으로 분류한다.

셋 중 어떤 집단 속한 사람이 가장 많은가?

 

분류가 끝났으면, 이번에 세 번째 집단에 해당하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전부 삭제해 보자. (단, 전화번호를 무턱대고 삭제하지 말고 반드시 백업을 받아두자)

이름과 전화번호가 몇 개나 남는가?

 

 

 

 

 

단순히 이름이 많이 남았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이번엔 최근수신목록으로 가서 이름이 남은 사람들과 최근에 통화한 것은 언제이고 또 얼마나 자주 연락을 주고 받았는지 확인해 보자. 이렇게 해 보면 은퇴 후 자신의 인간관계가 어떨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은퇴한 상사가 부하직원들에게 호통치면 병이다 

 

농경사회에서는 농사를 그만둔다고 집주변 이웃들이 사라지진 않는다. 하지만 직장과 주거지가 떨어져 있는 산업사회에서는 다르다. 퇴직과 동시에 직장에 출퇴근하면 맺었던 모든 ‘연(緣)’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물론 퇴직한 다음 옛날 직장 동료와 후배들과 개별적으로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매일 들락거릴 수는 없다. 게다가 과거 상사랍시고 후배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하거나 부탁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후배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다. 드러내 놓고 싫은 티를 내진 않더라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선배를 피하는게 다반사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단카이 몬스터’라는 책이 출간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단카이 세대란 1947년부터 1949년 사이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를 말한다. 2010년에 출간된 이 책에서는 퇴직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단카이 세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특히, 은퇴한 직장 상사가 전 직장을 찾아가 후배들을 호통치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일본에서는 퇴직한 상사가 전 직장 부하직원에서 전화를 걸어 업무지시를 하는 것이 새로운 정신병으로 보고된 적 있다. 따라서 정년 후 새로운 이륙을 준비할 때는 단순히 돈문제로 생각하지 말고 인간관계와 시간관리의 측면도 함께 고려해 일자리를 선택해야 한다.

 

 

완생 노년을 위해 '회사형 인간'에서 '가정형 인간'으로 변신하라

 

그리고 중년에 접어들면 인간관계의 중심축을 회사 밖으로 서서히 옮겨야 한다. 동호회나 동창회를 찾아 가는 좋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가장 먼저 부부관계부터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회사형 인간’에서 ‘가정형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남자들 입장에선 나중에 은퇴하고 나서 잘해주면 되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그때 고군분투 해봐야 이미 버스 지나고 손 흔드는 격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아내는 남편의 부재에 익숙해 있다. 이런 아내 앞에 정년퇴직과 함께 불현듯 나타난 남편은 낯설기만 하다. ‘은퇴남편증후군’에 시달리는 아내들도 있다. 아내들은 가정을 자신들만의 공간으로 생각하는데, 은퇴한 남편이 갑작스레 자신들의 공간을 침범하니 불안한 것이다. 남편들은 잃어버린 부부애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대부분 때가 늦다. 처음에 시도하다가 결국 나중에 포기하게 된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서로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사는 부부들도 허다하다고 한다.

 

중년의 위기는 일의 위기이도 하지만 가정의 위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과 가정의 균형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주의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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