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수 취재부장

2016년 1월16일. 한겨레신문에는 이런 글이 실렸다. 보통은 모 일간지지만, 출처를 밝혀도 무방하리라 생각한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성공회대 초대 교수(1944年)의 이름으로 실린 '역사의 스승, 시대의 지성 그리고 석과불식(碩果不食)의 교훈'이다.

정말 훌륭한 글이다. 쓴 시점이 2년전이니… 세월호 참극의 아픔 속에서 대한민국이 온통 슬픔에 젖어 있을 때의 일이니 말이다. 당시 고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돌아가신 직후였다.

이재정 현 교육감은 주역에 나오는 '과실나무에 달린 가장 큰 과일은 따먹지 않고 종자를 쓰는 것'의 뜻을 빌려와 '석과불식'이라 용어를 사용했다. 아주 뜻이 깊은 말이다. 은유적으로 교육종사자로서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자부심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재정 교육감은 "(중략)그런 단호함 속에서도 저는 선생님께서 그동안 굴곡진 삶의 과정에서 얻으신 '깨달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1960년대의 군사정권시절 어떤 불의에도 어떤 폭력에도 어떤 강압에도 자신의 진실과 진리를 지켜내셨던 지성의 양심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고 밝혔다.

(중략)"우리를 절망케 하는 것은/ 거듭되는 곤경이 아니라/ 거듭거듭 곤경을 당하면서도/ 끝내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입니다./ 어리석음은 반복입니다./ 그러나 거듭되는 곤경이 / 비록 우리들이 이룩해 놓은 달성을/ 무너뜨린다 하더라도/ 다만 통절한 깨달음 하나/ 일으켜 세울 수 있다면/ 곤경은 결코 절망일 수 없습니다.(중략)

(중략)이제부터 그것은/ 새 출발의 디딤돌이 되기 때문입니다."면서 " 이 글 옆에 선생님은 암흑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내는 작은 등잔의 빛을 그려주셨습니다. 이 말씀이 지금 바로 이 시대를 아프게 살아가고 있는 절망적인 사람들에게 주시는 유언처럼 느꼈습니다."고 회고했다.

이재정 교육감은 "선생님이 1988년 20년의 긴 형기를 마치고 가석방된 뒤 이룩한 가장 중요한 일들 중의 하나는 성공회대학교였습니다. 서울의 끝자락 '변방'에 있던 당시 대학에 준하는 각종학교였던 작은 신학교에서 선생님은 다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셨습니다."고 말을 이었다.

그는 "성공회신학교는 1993년 서울에서 20년 만에 처음으로 대학으로 발전하였고 1994년에는 성공회대학교로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선생님을 중심으로 '젊은 대학'이라는 기치 아래 다른 대학들과 경쟁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대학과 다른 대학을 만들려는 노력이 공감대를 만들었습니다."고 회고했다.

이 교육감은 "그리고 "한 사람을 위대하게 기르기보다, 열사람과 더불어 살 줄 아는 사람으로 기르는 교육"을 가치로 내세웠습니다. 선생님은 성공회대학교를 사람이 만들어가는 '더불어 숲'으로 변화시켜 나갔습니다."면서 글을 맺어갔다.

마지막으로 "마지막 저서 '담론'에서 선생님은 이런 글을 남겨 주셨지요.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일입니다.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 개념이 아닙니다. 사람이 '끝'입니다. (…) 욕망과 소유의 거품, 성장에 대한 환상을 청산하고, 우리의 삶을 그 근본에서 지탱하는 정치, 경제, 문화의 뼈대를 튼튼히 하고 사람을 키우는 일, 이것이 석과불식(碩果不食)의 교훈이고 희망의 언어입니다."라고 말이다.

이재정 교육감은 "선생님은 이제 긴 여행을 떠나십니다. 어떤 장벽도 없는 그리고 어떤 폭력도 없는 그런 평화의 영원한 세계로 떠나십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여전히 역사의 스승으로, 시대의 지성으로 우리들을 계속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라며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명문에 가깝다. 이재정 교육감이 고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를 얼마나 존경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겨레신문에 실린만한 글임을 또한 부정할 수 없겠다.

"욕망과 소유의 거품, 성장에 대한 환상을 청산하고, 우리의 삶을 그 근본에서 지탱하는 정치, 경제, 문화의 뼈대가 튼튼히 하고 사람을 키우는 일, 이것이 석과불식의 교훈이고 희망의 언어다."

지난 4년간 경기도교육청은 눈과 귀를 닫아버렸다. 교육은 대화가 그 기본이다. 가정으로 부터 사회까지 대화가 가장 중요하며 점점더 그 문화는 확산되어 있다. 아름다운 글 속에 뼈가 있고 기름진 육체가 있다면, 종교적 완성의 길도 같을 것이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앞으로의 경기교육이 나아가야할 방향과 문재인 정부의 교육개혁을 위해서, 그리고 지방분권, 교육분권으로의 아젠다를 이 경기도교육청이 만들어낼 수 있느냐의 물음이다.

이미 진보교육감 후보는 정해진 가운데 현 교육감과 보수진영 등이 칼을 맞대는 형국이 펼쳐지고 있다. 몇년전 김진춘 전 교육감의 6자 구도에 김상곤 현 교육부 장관이 뛰어들던 형세가 생각나게 한다.

누가 옳고 그르냐는 필자의 생각을 어느정도 정리하고라도 교육감을 선출하는 것은 경기도민이며 모든 책임도 유권자가 지는 것이다. 다만, 그것이 어린 학생들이 대상이 된다는 점만 다르다.

공자는 치매가 걸린 뒤에 한없이 후학들을 걱정하며 찾았다는 옛이야기가 있다. 수없이 많은 제자가 누군가의 곁을 스쳐지나갔지만, 그 제자는 가슴에만 남은 것이다. 경기교육의 제자들 하나하나를 가슴에 새긴 4년이었었나. 참으로 여러분께 물어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교육자에 있어서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자는 기사와 인간성이 곧 합해짐이 필요 없는 직업군이다. 그래서 유독 놈자(者)로 지칭한다. 시인이나 소설가도 크게 이 범주에 벗어나지 못할 군상이다. 교육자는 달라야 한다. 성직자는 더욱 달라야 하는 것이다.

한 20여년 후에 어느 경기교육의 제자가 이런 명문을 이재정 교육감에 바칠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어차피 정치인의 삶은 매일을 살아야 하는 것이고 그 평가는 후대가 하는 것이 맞다. 이 글과 역사적 사실은 또다시 생명을 쌓아갈 나날이 1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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