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수 기자

언젠가는 이 글을 쓸 것을 믿었다.

그리고 엄청나게 욕을 먹을 것이라는 것을 언젠가는 느꼈다.

그것을 막은 것이 현재의 사회인지, 아니면 과거의 후배들이었는지는 모호하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것이 나도 명확하게 어느 세기에 사는지 모르겠다.

하나, 언젠가 이 흐름은 멈춰져여 한다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이해했다는 점이다.

그것이 시작이면 좋았겠지만, 막연한 사회적 유리천당은 나에게 언제나 면죄부를 주어왔다.

그 면죄부를 아무리 거부한다해도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공인된 붉은줄은 나만이 기억하는 처참한 과거의 참상으로 남는다. 나는 그것이 적줄로 보이지 않는다.


...


내 스스로 약속한 적은 있다.

좋은 시절이 오면, 모든 상대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할 것이라고. 그렇다면, 인터뷰가 진실을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하다 고개를 떨구고는 했다.


...

인터뷰는 100% 진실할까?

그렇지 않다. 글좀 쓴다는 기자치고 인터뷰가 100% 정확한 정보를 준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을까?

점점더 인터뷰가 줄어든 이유다.

나는 언젠가 나 자신에 대한 많은 인터뷰를 한번 기사를 써보고 싶었다. 내 자신을 바라보는 그 시각을 적고 싶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다른 이면을 거부한다. 진실을 거부한다.


...

그리고 두렵기도 하다. 나를 보는 이 사회의 그 적나라한 지금 이순간, 그 말을 말이다.


...

돌은 과거나 지금이나 던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것을 던질때다.

작은 돌도 아프고 큰돌도 아프다. 그것을 서로 아프다고 느끼면 되는 것이다. 생존해 있는 시간 동안 아플 것이며...

그리고 왜 내가 생존해야 하는지 그 뜻을 주신분에게도 아프다고 말하고 싶다.

남자이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여자이기 때문에 퇴장되었어야했을까 아니면 우리는 내가 남는 것을 서로 확약을 했었기 때문이었을까(유독 오늘은 방송에서 문법에 맞지 않다는 문구가 이같이 보였다)

대한민국 속에서, 아주 잠시 기분이 나쁜 것 이상의 감정이 존재한 적이 있었나 싶다. 우리는... 최소 몇만년인데...

정하듯, 정하지 않듯 ...

여전히 그 고통은 내 책임이다. 그 책임은 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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