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수 취재부장

욕을 먹을 글이다.

그렇다고, 남자가 역성을 들 일도 아니었다.

그럼 당신들은 그렇게 깨끗한가? 그 사회의 질서가 민주주의가 진정으로 갖춰졌나?

나는 그렇게 묻고 싶다.

시대 속에서 숨을 쉬는 것이다. 역사를 공부한 개인은 그 시간이 보통 10년임을 알고 있다.

우리는 그 십년 안의 삶 속에서 옳은 일과 그른 일을 구별해 내야 한다.

미투 운동.

기자 스스로는 절대 깨끗하지 못하다고 본다. 기성사회 속에서 그리고 현실 속에서 깨끗한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미투 운동 속에서 우리는 하나 자각해야 할 것이 있다.

지금 우리가 후배들에게 진정으로 양성 평등의 존재감을 주고자 하는 것인가라는 문제다.

이것은 문화계 뿐만 아니라 법조계 등에도 드리는 질문이다.

운동이라 함은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사는 의미를 주는 일이다. 역사를 평가하는 미투 혁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80년대 이후, 우리는 자생적으로 나타난 많은 운동을 스스로 밟아버렸다.

지금도 밟고 짖누르고 있다. 오늘도 많은 장면 속에서 스쳐지나간다.

이 운동은 이미 지난 80년대, 90년대초 여성운동 속에서 '현실'로 자리매김했어야 한다.

갑자기, 올해 2018년 들어 급격하게 부각되며 과거를 외치고 있다. 어제는 왜 이야기 하지 않았나?

이 물음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것, 그리고 우리 사회가 가진 변증법적 오류의 다른 면이다.

여성사회의 다른 면이기도 하다.

적폐 청산에 대해서 너무 급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현재의 법은 현재에 맡겨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이야기하는 법의 시효와는 다르다.

우리는 공통된 범죄를 저질렀다. 나는 그렇게 얘기하고 싶다. 그렇다고 수원시에 대한 면죄부는 전혀 주고 싶지 않다.

수원시 문화관계자들은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과거부터 고은 시인의 개인적, 문학계에 존재하는 폐단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시했다. "설마"라고.

우리는 지금 이 '무시'에 대해서 이야기 해야 한다. 무시하는 과정 속에서의 문제, 법적인 다툼이 존재하기 전에 문제, 인지하고도 모로쇠로 하는 그 순간을 지칭해 적폐로 규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그분들에게, 연로하다고 해서 절대로 면죄부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시대의 죄는 공통적인 것일 뿐이다.

왜 아직도 여성 사회는 공통 범죄 속에서 '우리도 범죄의 일원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기자는 의문스럽다.

여성사회는 '우리는 왜 후배들에게 그것을 모로쇠로, 방조자로 머물렀다고 사죄하지 않는가?'라고 말이다.

죄를 선배에게, 그리고 다시 기득권을 획득한 사람이 다시 미래가 되어 죄를 묻는 것은, 그것은 적폐 청산이 아니라, 바로 보복이다.

이 글이 강할지라도 우리는 법치 사회 속에서, 현재 속에서 투쟁해야 한다.

그것이 문학인이든, 연극인이든, 언론인이든... 지금 문제가 있다면 우리는 싸워야 하는 것이다. 답은 후대가 내줄 것이다.

과거를 스스로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은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일이다. 과거의 피해자들이 있다면 복권에 나서는 것이 우선적인 문화인 선배로서의 일이다.

당신이 모른척했던 그 많은 후배들이 싸늘하게 글을 버리고, 연극을 버리고 살고 있다.

우리가 기득권을 위해 소모했던 청춘과 민주주의는 오늘 그것을 드러낸다고 해서 발전되지 않는다.

어제 싸우고 오늘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적폐 청산의 흐름이다. 과거를 청찬하고 단죄하고 싶다면 복권에 우선 나서달라. 선배들이여!

 

/글=정양수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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