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역자 영어가능로 줄리안 오피와 대화·조율" 요구
"유사기관과 차별화" 명기에 설치 관련 법규 검토도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은 주도적으로 기획전시에 나서야 한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일면은 2015년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개관기념전 '수원 지금 우리들 NOW US 1 SUWON' 전시도록 및 홍보물 제작 제안요청서에 잘 반영되어 있다.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은 지난 2015년 11월 이 제안요청서를 내놓았다.

사업예산은 모두 3천700만원. 이중 한영 번역료 320만원이 포함되어 있다.  도록 제작은 보통 1천500부 정도 발행되는 가운데 평균 3천만원대로 제작돼 홍보물로 사용된다.

주목할 점은 계약조건이다.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측은 "제시한 규격에 따라 제작업체에 편집을 하고 본 미술관의 검토를 필한 후 제작에 임한다"며 "원활한 사업진행을 위해 작업과정을 담당직원과 수시로 상의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사업과 관련한 저작권은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 귀속된다"면서 "제작사는 제작품을 임의로 복제 및 대외 반출하거나 사용할 수 없으며 제작 도중 규격서 등에 명기되지 않은 사항이 발생할 경우 본 미술관과 협의하여야 하며 상호 의견이 상이할 경우 본 미술관의 의견을 우선한다"고 덧붙였다.

부가적으로 "제작계획이나 과업지시서에 누락된 사항일지라도 성질상 당연히 제작해야 할 사항은 제작업체 부담으로 제작해야 한다"면서 "제작상 본 미술관의 승인을 받아야 할 사항이 있을 때는 문서 또는 서면으로 사전 통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계약자가 당시는 수원시인만큼 외주업체에 대한 충분한 가이드라인적 성격의 주도적 입장이 반영된 제안요청서다. 마지막으로는 기타사항을 관례에 의한다고 첨부했다.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은 계약과정에서 줄리안 오피전의 경우 분야별 세부사항의 별도 조항으로 "용역 대표자(기획사)는 영어가능자 및 직접 작가(줄리안 오피)와의 협의 및 조율이 가능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한, 과업수행지침을 통해 "계약대상자는 전시기본방향, 전시주제, 전시연출, 예산 등을 숙지한 후 제안서 내용과 발주처와 후가 협의한 사항을 토대로 제작·설치에 임해야 한다"며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의 특성화와 전시물 품질향상, 전시주제·전시내용·연출매체의 변화, 실물전시 적용, 최신 기술의 적용 등을 고려하여 유사기관과 차별화된 아이디로 제안하여야 한다"고 강제했다.

특히 이 대목에서 유사기관과 차별화된 아이디어의 경우는 공립미술관 최초의 줄리안 오피전인 만큼 서울의 화랑(갤러리)전을 염두에 둔 항목으로 보이며, 이미 줄리안 오피전이 국내에서 개최됐었음을 미술관측이 알고 있었을 가능성을 높인다.

무엇보다 미술관측은 전시주제, 전시내용, 연출매체의 변화, 실물전시 적용, 최신기술의 적용 등을 기획사에 요구함으로써 창작자로서 갖추어야 최소한의 덕목을 포기했다.

이는 계약자의 요구가 반영되도록 작가와의 대화가 가능한, 영어소통이 가능한 기획자의 자세를 요구함으로써 전시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큐레이터와 작가의 소통과정을 포기하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반면, 미술관측은 "본 과업과 관련해 건축, 기계, 전기(조명), 통신, 소방 등 관련분야에 대한 법규를 면밀히 검토하여 누락한 사항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공하여야 한다"며 "불가피한 사유 발생 시 발주처는 본 과업의 일부 또는 전부를 중지하거나 과업내용을 변경할 수 있으며 이에 따른 간접비 지급은 없다"고 명시했다.

작가와의 모든 조율을 요구하면서 미술전문 기획사가 파악하기 힘든 관련법 사항에 대해서는 상당한 책임을 지우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대해서는 용역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묘한 갑질 행정'의 다른 표본을 선보이기도 했다.

팝아트는 예술과 상업성(자본주의)의 경계를 넘나든다. 예술로 상업성을 창출할지, 상업성에 기초해 작품활동에 나설지는 오로지 작가의 몫이다. 이를 해석하는 것은 관람객이다.

국내에도 많은 작가의 작품이 억단위를 넘는다. 아직은 연륜과 미술풍토에 따라 작품의 가격이 올라간다. '철제 사과' 하나가 수백억이나 하는 세상에 아직 우리는 익숙하지 않지만 주요흐름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수원미술'에 '철제 사과'를 거리에 놓고, 걸어다니는 무표정한 사람을 들여놨을때(가격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팝아트의 새로운 흐름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는 연구대상일 뿐이다.

당장 수원시의회와 수원시의 허가과정에서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수원행궁과 행궁동, 대안공간 눈, 수원 공방거리 등 작고 따스한 미술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한 수원시민에게 영국발 팝아트는 수원미술의 미래로 가는 길로 여겨졌을지 충분한 설명을 했는지 의문이다.

"4억5천만원의 예산으로 이런 전시를 가져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는 답을 들었을 때, 우리는 올해 열릴 예정인 7억원 규모의 국제교류전(일정 미정)에 대한 또다른 우려를 가지게 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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