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히든 챔피언이 이끈다] 세계시장 주도 한국 경제 새 심장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독일의 경제성장률은 4.0%로 미국(2.5%), 영국(1.7%), 프랑스(1.7%)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고용률 역시 2009년 68.7%에서 2011년 71.1%, 2013년 72.3% 등으로 계속 증가했다. 선진국 대부분의 경제가 휘청거릴 때도 독일은 나홀로 성장을 거듭한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독일의 성장 비결을 중소기업에서 찾고 있다. 우수한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을 지원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강소기업인 ‘히든 챔피언’으로 육성해온 결과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나라 전체가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히든 챔피언’은 대중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과 능력을 갖추고 있어 그 분야의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우량 중소기업을 가리킨다. 전략, 마케팅, 가격 결정 분야의 권위자인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이 펴낸 <히든 챔피언>이라는 책에서 유래됐다. 히든 챔피언은 한마디로 강소기업(强小企業·작지만 강한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헤르만 지몬은 2011년 전 세계에서 2734개 기업을 히든 챔피언으로 선정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독일은 1307개로 미국(366개), 일본(220개)보다 훨씬 많았다. 반면 우리나라는 23개에 그쳤다.

히든 챔피언 기업, 독일 1307개, 한국 23개
대기업 중심 경제에서 중소기업 중심 경제로 전환 필요

현재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나라 히든 챔피언 기업은 63개로 추정된다. 2011년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한국은 지금의 대기업 중심 경제를 구조조정해 강소기업 중심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클라우스 슈밥 다보스포럼 회장의 조언처럼 현재의 대기업 주도 ‘산업경제’에서 독일처럼 히든 챔피언 중심의 ‘창조경제’로 혁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오늘날은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력이 기업과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는 시대다. 스마트폰, 무인자동차, 인공지능 등 세상을 바꾸는 큰 아이디어는 크고 작은 수만 개 기술이 결합돼야 현실이 될 수 있다. 하나의 대기업이 모든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건강한 벤처·중소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게 기술 무한 경쟁시대에는 매우 중요하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장은 “히든 챔피언 기업들은 기술 개발과 해외 수출 등을 통해 고용 창출을 선도하는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라며 “강소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정부가 연구개발(R&D), 인력 확충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행히도 우리 경제는 그 토대는 마련돼 있다. 벤처기업이 지난해 8만 개를 넘어섰고, 저성장 속에도 지난해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한 벤처기업이 474곳에 달했다. 지난해 새롭게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한 기업도 55개사로 집계됐다.

정부는 이들 벤처기업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중소·중견기업으로 키우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경제혁신 3개년 계획’ 핵심 과제의 하나로 한국형 히든 챔피언 육성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헤르만 지몬이 제시한 ‘히든 챔피언’ 기준은 ‘세계시장 점유율 3위 이내 또는 소속 대륙 시장점유율 1위’, ‘매출액 50억 유로 이하’, ‘낮은 대중 인지도’다. 하지만 이는 지나친 단순화와 일반화로 말미암아 실제 객관적 측정이 곤란한 측면이 있다.

이에 정부는 국내 전문가와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한국 경제의 특수성을 고려한 ‘한국형 히든 챔피언’ 기준을 세웠다. 세계시장을 지배(시장점유율 1~3위)하면서, 집중적 R&D(혁신성)와 적극적 해외시장 개척(글로벌 지향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독자적 성장 기반(독립성)을 갖춘 중소·중견기업으로 정의했다.

또한 세계시장 점유율 3위 이내 기업이면서 세계시장 규모가 국내시장 규모의 2배 이상일 것, 최근 3년 평균 매출액 100억 이상의 중소·중견기업일 것, 최근 3년 평균 매출액 대비 R&D 비중이 4% 이상일 것, 최근 3년 평균 매출액 대비 수출 비중이 20% 이상일 것, 국내 특정 대기업 납품 비중이 50% 미만일 것 등도 기준으로 세웠다.

‘글로벌 도약 단계’, ‘글로벌 성장 단계’로 나눠 지원
‘올해의 히든 챔피언’ 기업 10개씩 선정해 시상

정부는 한국형 히든 챔피언을 양성하기 위해 기업 역량에 따라 ‘글로벌 도약 단계’와 ‘글로벌 성장 단계’로 나눠 지원하고 있다. 글로벌 도약 단계는 매출액 100억∼1000억 원 사이의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글로벌 강소기업을 선정해 수출 마케팅과 R&D를 지원한다. 현재 393개 기업을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글로벌 성장 단계는 ‘월드클래스 300 프로젝트’를 통해 지원하고 있다. 월드클래스 300 프로젝트는 성장 의지와 잠재력을 갖춘 우수 중소·중견기업 300개를 세계적인 히든 챔피언 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로 2011년 시작됐다. 자격은 매출액 400억 원 이상 1조 원 이하 등이며, 한번 선정되면 10년간 R&D 최대 75억 원, 해외 마케팅 최대 5억 원 등을 지원받을 수 있고,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와 22개 유관기관으로부터 25개 지원시책을 지원받게 된다.

지난해까지 181개사가 월드클래스 300 기업으로 선정된 데 이어 올해 50개사가 추가 선정돼 총 231개 기업이 선정됐다. 중소기업청은 올해 선정된 50개사가 기술 융합과 제품 혁신, 신시장 개척 등 신성장 전략을 통해 향후 5년간(2016~2020년) 1만5000개 이상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매출액 측면에서는 2020년까지 업체 평균 4788억 원으로 전망해 2015년(업체 평균 1220억 원) 대비 3.9배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중소기업청은 세계시장에서 선도적 위치를 차지한 중소·중견기업을 선정해 사기를 진작하고 성공 모델을 공유하자는 취지로 올해부터 ‘올해의 히든 챔피언’ 기업을 10개 정도씩 선정해 수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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