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스타 아빠들의 육아 도전기를 그린 육아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눈길을 사로잡는 제품이 있다. 산뜻한 색감의 유아용 소파다. 일명 ‘삼둥이 소파’로 불리는 이 제품은 친환경 유아가구 브랜드 이쯔(IIZZ)에서 만든 것이다. 스펀지가 아닌 폴리우레탄으로 만들어 가벼우면서도 튼튼한 것이 특징. 이쯔를 론칭한 임상범(33) 에이치알엘 대표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아이들이 촬영이 없을 때도 소파를 자기 물건처럼 사용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이쯔가 다른 협찬 제품들을 제치고 해당 프로그램의 공동사업 업체로 선정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이쯔는 유아용 가구업계의 숨은 강자다. 2015년 3월 ‘대한민국 고객만족 브랜드 대상’을 받았고 한 해 동안 유아용 소파만 6만 개 넘게 팔았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2013년 창업한 에이치알엘은 지난해 매출 25억4500만 원, 영업이익 1억8880만 원을 기록했다.

임상범 에이치알엘 대표는 대기업 간의 경쟁이 치열한 가구시장에서 틈새시장을 겨냥해 유아용 소파 등을 론칭하며 유아가구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가볍고 실용적인 유아용 소파 개발
유통 단계 줄여 가격 경쟁력 확보

유아용 소파 붐을 일으킨 임상범 대표는 가구 전문가가 아니다. 그는 원래 한 인터넷 기업에서 상품 개발 업무를 담당했다. 평범한 직장인이던 그가 유아용 가구시장에 뛰어든 건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온 창업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물론 꿈을 이루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회사를 박차고 나온 건 아니다. 2012년 상품기획사원으로 일하면서 그는 두 가지 현상을 포착했다. 하나는 1인 가구의 증가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작고 가볍고 실용적인 가구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국내 가구업체들은 고가 가구상품을 주로 선보였다. 그러다 세계적 조립식 맞춤가구업체인 이케아가 국내 가구시장에 진출한다는 말이 나돌면서 저가 가구 붐이 일었다. 임상범 대표는 대기업 간의 경쟁이 치열한 가구시장에서 틈새시장인 1인 가구를 타깃으로 한 소파베드를 선보이자고 생각했다.

그가 주목한 또 다른 현상은 소셜커머스의 등장이다. 창업기업은 대기업과 경쟁하기엔 자금과 인력 면에서 열세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품질과 가격 경쟁력만으로 살아남기는 어렵다. 판매 채널을 확보하지 못하면 제아무리 질 좋은 상품이라도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 대표는 2012년 새로운 유통 채널로 떠오르던 소셜커머스를 발 빠르게 공략했다. 유통 단계를 줄여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첫 브랜드가 성인용 가구업체 리빙온(Living on)이다. 임 대표는 소셜커머스를 중심으로 성인용 소파베드를 선보였다. 가격은 4만~5만 원대 중가로 설정했다. 제품력이 뛰어나고 가격이 합리적이라면 저가 상품을 구입하던 고객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리빙온의 소파베드에 고객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임 대표는 자신감이 생겼다. 회사의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할 두 번째 브랜드를 고민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유아용 소파를 만드는 것이었다. 주위에선 출산율 감소 탓에 시장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 우려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미 성인용 소파베드를 출시하면서 가성비(가격 대비 품질) 높은 제품의 효과를 확신했던 터였다. 2013년 5월 두 번째 유아용 가구 브랜드 이쯔를 선보였다.

그의 도전은 현재 알찬 열매를 맺고 있다. 2015년 유아용 책상소파 포포는 하루 400개 넘게 팔리며 최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수익성도 향상됐다. 2013년 2억9000만 원에 그치던 매출액은 1년 만인 2014년 10억1000만 원을 기록했다. 2013년에는 5800만 원의 영업손실을 보았지만, 2014년에는 영업이익 400만 원이 되면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물론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임 대표는 “창업을 시작한 이후 하루도 마음 편히 지낸 날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자금을 제때 마련할 수 없어 곤경에 처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주문이 갑자기 물밀듯 밀려와 생산량을 대거 늘려야 했던 때가 있었어요. 당시엔 수익이 마이너스였던 때라 금융권 대출은 꿈도 꾸지 못했어요. 다행히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주문량에 맞춰 공장을 가동했지만 자칫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면 타격이 컸을 거예요. 이런 일로 회사 문을 닫는 경우가 적지 않거든요.”

이런 와중에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청년전용창업자금을 알게 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뛰어난 제품력과 회사 성장성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에이치알엘은 1억 원의 자금을 지원받았다.

아시아 중심으로 해외 시장 진출
유아용품 전문기업이 최종 목표

임 대표는 최근 직원들의 근무 만족도를 높이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 에이치알엘은 오전 10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에 야근 없는 문화를 고수한다. 회사는 직원들의 점심값을 지원하고, 해마다 연봉 15%가량을 인상한다.

“에이치알엘은 상장기업이 아니지만 8명의 전 직원에게 0.5%씩 회사 지분을 나눠줍니다. 혹자는 휴지조각에 불과한 것으로 생색내는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사원들의 애사심과 주인의식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어요. 덕분에 지금까지 근무한 직원 가운데 자발적으로 퇴사한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이쯤에서 만족할 법도 하지만 그는 벌써 다른 목표를 향해 뛰고 있다. 해외시장 진출과 유아용품 전문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미 중국에 지사를 세웠고 대만에서는 총판을 확보했다. 그는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수익을 창출할 계획”이라며 “앞으로는 유아용 식품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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