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희망] ‘청년장사꾼’ 김윤규 대표

‘죽어가는 골목 살린 청년 상인들’, ‘노점서 30억 신화 일군 청년장사꾼’, ‘열정감자로 대박 친 20대 청년장사꾼의 비결은?’….

포털사이트에 ‘청년장사꾼’을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기사 제목들이다. 창업 5년 만에 전국 17개 매장에서 수십억 원대 매출을 올릴 만큼 성장한 ‘청년장사꾼’은 20, 30대 청년 36명이 모인 단체이자 기업이다. 이들은 수익 창출과 동시에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는, 조금은 특별한 목표를 갖고 있다. 죽어가는 상권도 살렸다는 기사 제목은 여기서 비롯됐다.

“청년장사꾼은 장사를 재미있게 하는 청년들이 모인 단체 겸 기업이에요. 청년장사꾼이 여러 아이템의 매장을 열면, 멤버들이 분할 배치되어 장사를 하게 되죠. 장사를 하고 싶었던 저와, 지역 활성화에 키워드를 두고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던 공동 창업자 김연석 씨가 의기투합해 지금의 청년장사꾼을 만들게 됐습니다.”

스물다섯이던 2011년 동료와 함께 ‘청년장사꾼’을 공동 창업한 김윤규 대표는 레드오션인 식당 창업에서 ‘열정’ 하나로 승부를 봤다.(사진=청년장사꾼)

소자본으로 시작한 감자튀김집
에너지(열정), 재미, 감동으로 대박

청년장사꾼 김윤규 대표는 이제 겨우 서른 살의 젊은 창업자다. 그는 공동 창업자 김연석(35) 씨와 함께 2011년 처음 청년장사꾼을 설립했다. 말 그대로 장사를 꿈꾸는 청년들이 모인 이 조직의 초창기 멤버는 2명의 창업자를 포함해 총 5명. 이듬해 서울 이태원에 첫 카페를 열고 한 달 만에 쓴맛을 봤지만, 두 달 뒤 경복궁역 근처에 ‘감자집(구 열정감자)’을 개업해 소위 대박을 쳤다.

“당시 저희가 가진 최소한의 자본으로 매장을 열 수 있는 자리가 경복궁역 근처의 금천교시장 한구석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시장 안에는 맥주 한잔 할 만한 가게가 없었죠. 감자튀김이면 맥주와도 잘 어울리고 큰 기술이 필요한 안주도 아니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감자튀김으로 아이템을 정했어요.”

횟집, 전집 등이 주를 이루던 시장 골목에 생긴 감자튀김집은 이색적일뿐더러 저렴했다. 무엇보다 직원들의 에너지가 넘쳤다. 맛도 맛이지만 콘셉트의 성공이었다.

“저희는 시작할 때부터 몇십 년 동안 음식을 해오신 분들의 ‘손맛’은 따라갈 수 없다고 판단했어요. 그 대신 손님에게 팔 수 있는 적정한 맛의 음식을 준비하고, 모자란 부분은 에너지와 감동, 재미를 주는 장사로 채우자고 결심했죠. 유니폼에는 ‘크게 될 놈, 뭘 해도 될 놈’, ‘감자 살래 나랑 살래’ 같은 멘트를, 매장 벽에는 ‘열정을 만나면 정열이 솟는다’ 같은 글귀를 새겨 넣어 청년장사꾼만의 색깔을 알렸습니다.”

손님이 즐거워하고 단골이 늘어나는 게 눈으로 보였다. 주변에서는 감자튀김 팔아서 돈이 되겠냐는 우려의 시선도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감자튀김에 맥주를 아무리 양껏 시켜도 1만 원이 채 안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님은 다섯 평짜리 가게가 다 받지 못할 만큼 차고 넘쳤다. 김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한 달에 6000만~7000만 원씩 매상을 올렸는데, 아마 가게 면적 대비 매상이 전국 톱 10위 안에 들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열정만으로는 안 되는 일도 있었다. 초보 창업자인 만큼 상표권의 중요성을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것. 김 대표는 억울하게 상표권을 빼앗긴 일을 가장 잊기 힘든 순간이라고 말했다.

“창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도 수없이 많았어요. 자본도 부족했고,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고, 아이템이나 상권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죠. 하지만 가장 마음 아팠던 건 ‘감자집’의 상표권을 빼앗긴 사건이에요. 처음 오픈했을 때 가게 이름이 ‘열정감자’였어요. 2012년 10월부터 장사를 시작해 재미있는 문구와 에너지로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는데, 언론에 소개되고 널리 알려지면서 상표 브로커가 ‘열정감자’라는 이름을 먼저 등록해버린 거죠. 결국 저희는 ‘청년장사꾼 감자집’이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바꿔야 했어요. 지금도 그때의 사건을 기억하며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공부하고 있습니다.”

창업은 일한 만큼 대가 인정받는 일
‘포기’ 대신 지켜낼 가치를 떠올려라

경복궁 감자집의 성공 이후 청년장사꾼은 ‘철인28호’, ‘치킨혁명’, ‘치즈어랏’, ‘치킨사우나’ 등 다양한 브랜드 매장을 늘려나갔다. 특히 서울 용산구 남영동 일대의 한 허름한 골목에 가게를 연달아 열면서 죽은 상권을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래된 인쇄공장과 식당 몇 개만 덩그러니 있던 이 골목은 청년장사꾼이 들어서면서 사람이 북적이는 인기 골목으로 변했다. 김 대표는 뜻을 같이한 멤버들이 아니었다면 이처럼 다양한 활동을 해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청년장사꾼은 현장에서 경험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체적으로 만든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교육기간은 2주. 장사를 꿈꾸는 329명의 예비창업가들이 이 교육 프로그램을 수료했고 일부는 청년장사꾼의 일원이 됐다. 청년장사꾼 정직원이 되면 4대 보험도 보장받는다. 그는 청년장사꾼의 첫 번째 자격으로 ‘의지’를 꼽았다.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장사를 배우는지, 열중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봐요. 학벌이나 나이, 지금까지 뭘 하며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죠. 그렇게 청년장사꾼으로 2년간 열심히 일한 직원은 새로 문을 여는 가게에 투자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요. 본인이 지분을 가진 가게에서 일하며 주인이 되는 연습을 하는 것이죠.”

대학 시절 전자전기공학을 전공한 평범한 대학생이던 김 대표는 한때 창업의 계기로 “대기업 갈 스펙도 안 됐고, 그렇다고 요즘 유행하는 계약직이 되기도 싫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저는 제 시간을 온전히 쓸 수 있으면서, 열심히 일한 만큼 대가를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 답은 창업이었죠.”

아이디어 창업 대신 레드오션인 식당 창업을 택했지만, 김 대표의 ‘열정’은 특별함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그는 ‘삼포세대’의 포기라는 말은 절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는 청년장사꾼 멤버들에게 ‘삼포(취업, 결혼, 출산 포기)’는 절대 하지 말자고 말합니다. 그 대신 가족, 건강, 소중한 사람 이 세 가지를 생각하자고 말하죠. 사회가 힘들고 모두가 힘들어한다고 ‘나도 포기해야지’가 아니라, 내가 꼭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정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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