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누나 리더십’으로 신설지사 기반 강화
“평창올림픽 성공하려면 안전이 최우선돼야”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안전공단에 누군가를 만나면 “안전공단 안전관리팀 안광인”이라며 자기 소개를 하는 신입 여성직원이 있었다.


대학에서 안전공학을 전공한 그는 공단이 창립되던 해 홍일점 공채 1기(기술직)로 들어와 27년이 흐른 지금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가 되었다.


자신이 공단에 들어온 것은 운명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안전보건 우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강원동부지사 안광인 지사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안전보건공단은 업무의 특성상 산업현장 근무가 많고, 또 중요하다. 각 지사는 해당 지역의 산업 재해 예방을 진두지휘하는 최일선이다. 


안광인 지사장은 이런 현장 중심의 공단 21개 지사 중 유일한 여성 지사장이자, 최초의 여성 지사장이다. 강원도 영동지역과 정선, 태백, 영월 등 5개시, 5개군의 산업현장을 관할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굵직굵직한 대형 프로젝트가 많다. 평창 동계올림픽 건설공사, 발전소 건설공사 등을 비롯해 광산, 시멘트 공장 등 산업 안전 위해 요소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감정노동자가 밀집한 대형리조트, 카지노 등도 다수 산재해 있어 여러모로 신경쓸 일이 많다.


강원동부지사는 지난해 1월 강릉출장소에서 강원동부지사로 기관승격하여 정식 출범했으며 그동안 다소 취약했던 이지역의 안전문화의식 확산을 위해 집중적인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다.


김인성 안전보건공단 강원동부지사 팀장은 “작년 초만 하더라도 이 지역에서 공단의 존재감이 미미했고, 그 결과 재해예방에도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는데 올해는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며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신생조직을 잘 추스리며 올해는 최고의 평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광인 지사장의 부드러운 ‘큰 누나 리더십’이 조직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안광인 안전보건공단 강원동부지사장. 공단 출범후 27년만의 첫 여성지사장이다.


다음은 안광인 지사장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Q. 산업안전하면 보통 위험하고 어렵고 거친, 즉 ‘3D’ 분야라는 인식이 떠오릅니다. 남성도 아닌 여성이 산업안전 분야에 뛰어들게 된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나요?


-  그 시절만 해도 안전보건이 그렇게 중요시되지 않고 산업화, 생산에만 몰두하던 때에 새로운 학문인 안전공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생소한 분야이다 보니 그 때도 여학생은 거의 없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마침 안전공단이 생겼고 전공과 딱 맞아 자연스럽게 기술직 공채1기로 입사하게 됐습니다. 


Q. 막상 입사를 해보니 어떠셨나요. 그때만 해도 여성이 공공기관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지않았을텐데요.


- 지금은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이 많이 늘었지만 당시만 해도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여직원은 많지 않았어요. 저희 공단도 마찬가지였죠. 입사 후 처음 배치를 받은 곳이 진단사업부였는데 거의 대부분이 남직원 일색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성이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어요. 당연히 보고 배울만한 롤모델도 없었습니다. 다행히 활발한 성격이다 보니 남자직원들과도 허물없이 부딪히며 하나 둘 배워나갔습니다.


Q. 안전보건공단 출범 27년만에 첫 지사장인데요. 감회가 남다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 지사장 발령을 받고 사실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작년 1월 1일 강릉에 왔는데 생소한 지역인데다 신설지사인 탓에 존재감도 약하고 설상가상 100년 만의 폭설로 2미터 이상의 눈이 쌓여 한 달 이상 사업도 늦어지고 이래저래 고전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이후 현장을 자주 방문하고, 각종 기관장 모임이나 회의 등에 참석하는 등 스킨십을 강화한 홍보활동으로 공단 인지도도 높아지고 산업안전에 대한 관심도도 크게 상승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Q. 안전보건공단 강원동부지사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강원동부지사 관할 지역은 위로는 고성부터 아래로는 삼척까지 5개시 5개군으로 매우 광범위합니다. 사업장 수는 3만여개, 근로자는 20만여명에 달합니다. 게다가 전국 5대 무연탄 광업소 중 4곳이 이지역에 있고, 평창동계올림픽 건설공사와 대규모 발전소프로젝트까지 대형 건설 공사가 산재해 있습니다.


평창올림픽 건설공사의 경우 일부 공사에서 착공이 늦어지고 예산도 삭감되는 등 산재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보통 건설공사에서 시간에 쫓기면서 공사비까지 줄어들면 사고가 많이 나거든요. 그래서 얼마 전 현장 소장님들과 안전관리자들이 함께 모여 워크숍을 하며 산재예방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Q. 일을 하시면서 느낀 여성으로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 입사 초기 현장을 방문하면 현장관계자가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안전점검을 나왔다고 말하면 “아주머니가 점검하시게요?”라며 대놓고 무시하기도 했죠. 이런 경우 화를 내기보다는 웃으며 “아주머니가 안전점검 좀 하면 안되겠습니까?”라고 부드럽게 응대했습니다. 그랬더니 오히려 상대방이 멋적어 하더군요.


그밖에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있지만 여성으로서 일-가정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다행히 공단과 동료, 선후배들이 잘 도와줘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안광인 지사장이 건설현장 소장 및 안전관계자와 함께한 워크숍에서 특히 사망사고 예방을 강조하고 있다.


Q. 반면 여성으로서의 장점도 있을 텐데요. 산업안전 분야에서 여성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 산업안전보건 분야에 꼭 ‘중후장대’한 업무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교육용 교재, 각종 홍보자료, 안전작업매뉴얼 등 교재나 자료개발 업무도 많이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 자료나 교재개발 분야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안전분야 전문성과 현장 경험을 갖춘데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예술성을 살려서 딱딱하기만 했던 교재나 홍보물을 좀더 친근감있고 다양하게 개발보급하다 보니 현장에서의 호응이 좋았습니다.


Q. 첫 여성 공채 직원으로 공단내 롤모델은 없겠지만, 사회적으로 여성리더십과 관련한 롤모델이 있다면?


- 먼저 김화중 전 보건복지부 장관님이 떠오릅니다. 업무 상 장관이 되시기 전 교수시절 부터 알게 됐는데요. 당시에도 언행이 아주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장관이 돼서도 역시 잘 하시더군요. 사스 유행 시 적극적으로 일하며 청와대는 물론 관련 장차관들을 새벽마다 회의에 나오게 하며 모든 자원과 관심을 사스 대처로 돌리는 등 사스 퇴치의 숨은 공신이라는 평가입니다.


이밖에 직업공무원 사상 최초로 차관에 오른 김송자 전 고용노동부 차관님, 역시 매번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써 내려간 전재희 전 고용노동부 장관님 등이 롤모델이라고 하면 롤모델이 될 수 있겠습니다.


Q. 사회로 진출하는 여성이 점점 늘고 있지만, 일-가정 양립을 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와 관련해 여성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제가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와 비교하면 요즘 제도적인 여건은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그때만해도 출산휴가 2달이 끝이고, 육아휴직은 꿈도 못 꾸었거든요. 심지어는 결혼하면 직장을 그만두는 곳도많았죠.


일-가정 양립을 위해서는 역시 사회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동료 직원, 특히 남직원들의 배려와 이해도 중요하고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저희 지사는 남자 직원들의 배려가 최고입니다. 지난해 초만 해도 전체 직원 25명 중 여직원이 1명에 불과했는데 지금 7명으로 늘어났으니 여직원이 선호하는 지사가 아닐까요.


여직원들에게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요. 여성이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출산기-육아기-고3 수험기 등 고비가 찾아오는데 그 때 포기하지 말고 잘 참아 넘기라고요. 순간의 고비를 잘 참고 넘기면 반드시 조직에도 크게 기여하고 보람된 날이 찾아온다고 생각합니다.


Q. 산업안전보건 분야에 근무하다 보면 많은 사건사고를 접하는데 특별히 기억나는 사건사고는 어떤 것이 있나요?


-4년 전쯤인가 수도권의 한 조그만 식품회사에서 사망사고가 난 적이 있어요. 식품회사는 보통 위험작업이 없는 편인데 조그만 혼합기에 옷소매가 걸려 팔까지 말려들어 결국 과다출혈로 사망하게 된 사고입니다.


그 장면을 목격한 사장은 충격이 지워지지 않아 괴로워하다 결국 폐업까지 하게 됐습니다. 작업 시 뚜껑을 덮지 않은 작은 부주의로 한 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일자리를 잃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지요.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서는 사소한 것이라도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교훈을 준 사고입니다.   

 

▲안광인 지사장이 평창동계올림픽 건설공사 산재예방을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안 지사장은 “평창올림픽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는 등 안전을 강조하고 있다.


Q. 요즘 우리나라 산업안전은 어떻다고 생각하시나요?


- 예전과 비교하면 정말 크게 좋아졌습니다. 공단설립 당시인 1987년 재해율이 100명 당 2.66명이었으나 지금은 0.5명 수준으로 크게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사망만인율(1만명당 사망자수)은 일본의 5배, 영국의 24배에 이르는 등 안전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전체적인 국민 안전 의식은 작년 세월호 사고 이후 높아진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장성요양원화재사고, 고양터미널화재사고,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 등 안전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는 것을 보면 아직 미흡하다고 생각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안전 의식입니다. 그래서 최근 공단의 안전강화 방향도 안전의식 고취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조심조심 코리아’라는 구호성 캠페인을 진행했다면, 최근에는 “작업 전 안전점검, 당신의 생명을 지킵니다”라는 실천형 캠페인으로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Q. 신체적인 산업재해 이외에 최근 ‘감정노동’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데요.


- 저희 지사 관할 지역에도 대형리조트가 많습니다. 강원랜드 카지노도 있고요. 그래서 감정노동 관련한 산재예방에도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해당 직원들에게 “나는 감정노동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가 감정노동자라는 사실을 인식하라고 교육합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정신무장을 해야 되기 때문이죠. 


Q.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 앞으로 관내에 대형공사들이 계속되는 만큼 무엇보다 산재예방에 만전을 기할 방침입니다. 또한 내부적으로는 사업성과를 잘 챙겨 최고 등급(S)을 받는 지사가 되겠습니다.


아울러 평창올림픽 건설, 발전소 공사, 수산물가공과 서비스 분야에 산재 예방의 초점을 맞추는 등 선택과 집중을 통해 근로자들의 안전을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평창올림픽 건설 공사와 관련해 사망사고가 없게 철저한 예방활동을 펼칠 계획입니다. “평창올림픽이 성공하려면 안전이 최우선돼야 한다”라는 슬로건 아래 현장활동을 강화하는 등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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