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경 한국외국어대 대외부총장

국가브랜드는 국가 경쟁력이다. 그 나라의 ‘얼굴’인 브랜드를 관리하는 문제는 그 나라의 위상을 관리하는 일과 같아서 세계 각국이 여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브랜드 관리에는 일정한 표준이 없다. 각국이 저마다 처한 경제적, 사회·문화적 특수성과 역량에 따라 원칙과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전략적으로 육성하고자 노력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국가를 브랜드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국가브랜드 육성 정책이 시작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이와 관련한 노하우나 시스템도 부실한 형편이다. 국가를 성공적으로 브랜드화한 나라들의 노력을 들여다보며 교훈을 얻어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19세기 초 영국의 식민 통치를 벗어나 1959년 독립정부로 거듭날 당시 부존자원의 한계가 많은 신생국가였다. 그러나 지금은 투명성, 정부 효율성, 국가경쟁력에서 세계 최상위 그룹에 속하는 나라로 금융과 물류 분야에서 아시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이처럼 작지만 강한 나라를 표방한 싱가포르는 리콴유 총리의 지휘 아래 ‘세계적인 국가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정부 주도의 개방 경제, 실리 외교를 펼쳐왔다. 그 결과 싱가포르는 1990년 이후 산업의 고부가가치를 위한 산업 구조조정, 해외 시장을 겨냥한 서비스업 정착 등으로 국제 비즈니스의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싱가포르 정부는 1990년대 국가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국가브랜드 추진기관인 ‘새로운 아시아 싱가포르(New Asia Singapore)’를 출범시키는 한편 관광산업에 체험 브랜드 전략을 활용해 독창적이고도 특이한 즐거움을 제공하기로 했다. 2006년에는 ‘독특하게 싱가포르(Uniquely Singapore)’를 표방하면서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문화도시국가’를 관광 브랜드 캠페인의 주요 쟁점으로 삼아 관련 논의를 진행했다.


더 나아가 2010년에는 다양한 싱가포르의 역량을 표현하기 위해 ‘당신의 싱가포르(Your Singapore)’라는 국가브랜드 슬로건을 만들었다. 이는 대규모 단체 관광객보다 실질적으로 더 많은 돈을 쓰는 개별 관광객들의 다양한 수요를 발굴해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는 목표로 운영됐다.


이와 함께 싱가포르 정부는 싱가포르를 의료 허브 국가가 되도록 ‘의료 싱가포르(Singapore Medicine)’라는 국가브랜드를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의료산업은 지식 기반 산업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관광 브랜드를 산업 육성과 연계해 싱가포르식 창조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이처럼 싱가포르가 효과적으로 국가브랜드를 추진한 것은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민관의 하위 조직들이 국가브랜드 정체성 구현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효율적으로 협업한 덕분이다. 특히 싱가포르 정부는 ‘싱가포르의 친구들(Friends of Singapore)’이라는 그룹을 만들어 국가브랜드 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해왔다. 싱가포르에 우호적인 세계 각국의 리더들 간 긴밀한 네트워크 장을 마련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싱가포르의 국가브랜드 관리는 조직 관리, 운영, 활용의 미학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새로운 아시아 시대를 주도하는 도시국가라는 브랜드를 얻은 싱가포르의 노력을 주의 깊게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영국 정부가 2012년부터 4년째 벌이고 있는 그레이트 캠페인(Great Campaign)은 영국의 다양한 문화와 산업을 홍보하고,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영국의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펼치고 있다. 한국의 가로수길(지난해), 신촌(올해 10월 2~3일)에 내걸린 캠페인 포스터.(사진=영국대사관)

 


 

 

혁신적으로 국가브랜드를 운영한 사례를 꼽는다면 단연 영국의 ‘멋진 영국(Cool Britania)’이 떠오른다. 1997년 영국 정부는 창의와 열정을 핵심 가치로 삼고 이 캠페인을 진행했다. ‘영국을 오래된 전통과 역사를 기반으로 독창성과 활기가 넘치는 나라로 만들어가자’는 범국민의 다짐을 반영한 것이다. 당시 국가브랜드 캠페인은 창조산업의 활성화를 통해 경제 발전을 도모하고 더 나아가 낡은 국가브랜드 이미지를 혁신적으로 바꾸겠다는 전 국민적 의지가 담겨 있다. 이렇듯 영국 정부는 젊은 영국을 표방하며 과감한 전략을 택했다.


실제로 영국은 이 캠페인을 추진한 뒤 유럽의 정보혁명을 주도하며 정보기술(IT) 분야의 유럽 허브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시 말해 정보산업이 영국의 전략 산업인 창조산업으로 통합됐고, 창조산업은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급격한 성장을 거두게 됐다. 새로운 영국을 건설해보겠다는 희망과 노력이 더해진 덕분에 관련 산업이 성장한 셈이다.


‘멋진 영국’ 캠페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대체로 “음악, 패션, 예술 등 소프트파워산업에서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제조업, 기술산업의 성공과는 무관했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영국 스스로가 국가브랜드 형성을 위해 전통과 함께 미래 지향적인 정체성에 집중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영국의 국가브랜드 캠페인이 정점을 찍은 시점은 2012년 런던 올림픽과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60년을 기념으로 ‘이것이 대영국이다(This is the Great Britain)’ 캠페인이 진행됐을 때다. 당시 영국은 방문하고 싶은 나라, 유학가고 싶은 나라, 비즈니스의 최적지, 럭셔리 패션의 나라 등 최고의 이미지를 홍보하며 새로운 국가브랜드를 모색했다.


이런 점에서 영국의 사례는 세계 다양한 국가들의 브랜드 관리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영국의 국가브랜드 관리는 영국 관광청이 주도하면서도 교육, 외교,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업했다는 점 또한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독일 정부는 유럽연합(EU) 통합이 진행된 1990년대 말부터 기업, 정부 차원에서 국가브랜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대외적으로는 유럽공동체 내에서 선도적인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대내적으로는 독일 국민들이 EU의 일원이자 EU의 지도적 국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자긍심을 이끌기 위해서였다.


당시 독일은 자국의 역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산업에 응용하려는 노력을 강조했다. 우선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했다. ‘당신이 독일입니다(Du bist Deutchland)’ 캠페인이 대표적인 사례로, 이는 나치 통치 이후 독일인의 자부심을 내세우는 것을 금기한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행보였다. 이 캠페인은 다양한 산업 현장에 있는 국민들이 ‘독일인’이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연대함으로써 정체성은 물론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독일 정부는 국가브랜드를 정립하기 위해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다양한 장르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과거 엔지니어링의 나라로만 보이던 독일의 보수적인 이미지를 벗기 위해 ‘아이디어의 나라’라는 독일의 명성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중소기업들 하나하나가 참여한 ‘독일 엔지니어링(German Engineering)’ 캠페인부터 국민 한 명 한 명이 참여해 세계인에게 친절한 얼굴이 되고자 노력한 국가브랜드 캠페인까지 다양하게 진행했다. 그 덕분에 내·외국인들, 특히 투자 결정자들이 문학, 예술, 과학의 발상지라는 독일의 역사를 배경삼아 투자했고 탁월한 성과를 얻게 됐다.


독일은 우선 완벽주의, 원칙주의 독일인에서 성실하고 친절한 독일인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얻었고,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다만 국가브랜드 추진을 주로 국내에서 진행했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한편으로는 대국민 참여와 국민들에 대한 계몽을 중시해 국민들의 정체성 확립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캐나다의 국가브랜드 육성은 관광에 집중돼왔다. 특히 1990년대부터 캐나다 관광청은 관광산업의 성장 잠재력을 인지하고 2013년까지 관광 수입 5억4790만 캐나다달러(약 5764억 원) 달성을 위해 전략을 세웠다. 일단 캐나다 정부는 관광서비스산업의 대외 브랜드 자산을 높이기 위해 ‘국가 정체성 프로그램(NIP : National Identity Program)’을 개발했다. 그러면서 통합 상징물, 타이포그래피, 시그니처, 색채 등으로 구성된 NIP 매뉴얼을 바탕으로 국가 정체성을 만들고,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관광 전략을 수립해 추진했다.


실례로 캐나다는 관광과 관련한 다양한 캠페인을 벌였다. 그 하나가 ‘캐나다, 끝없는 발견(Canada, Keep Exploring)’ 캠페인으로, 대규모 이벤트를 개최하며 국가브랜드 전략 집중 분야를 관광 영역으로 설정하고, 기존 이미지를 보완해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특히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관광 전략을 수립하고 캐나다 관광청을 중심으로 소비자 광고 및 마케팅을 실시하며 국가브랜드를 관리했다.


이와 함께 ‘캐나다 알기(Know Canada)’ 캠페인은 21세기 캐나다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알리고자 2012년부터 시행했다. 이 캠페인은 관광서비스를 디자인 차원에서 홍보해 성공을 거둔 사례로 꼽힌다. 당시 캐나다 국기에 있는 두 개의 빨간 선을 ‘프레임’처럼 활용해 프레임 사이에 캐나다를 대표할 만한 이미지들을 넣는 방식으로 홍보 활동을 전개한 것으로, 이 캠페인은 세계적인 디자인 평가기관에서 우수 사례로 꼽히는 성과를 거뒀다.


앞에서 살펴본 선진국들의 국가브랜드 추진 사례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선진국들은 대체로 국가브랜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올바른 국가 정체성을 발굴하고, 더 나아가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얻고자 노력했다. 특히 한 나라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국가 상징체계를 꾸준히 개발했다. 또한 국가브랜드 추진에 있어서 정부와 중앙 조직의 조율과 리더십이 선행됐다. 또한 국가브랜드는 실체와 이미지를 연계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됐다. 우리나라 또한 다른 선진국들처럼 민관이 협업해 독창적인 국가브랜드를 만들어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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