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구 해외건설협회 금융지원처장

▲정창구 해외건설협회 금융지원처장

지난 6월 29일 베이징에서는 57개 창립회원국이 모인 가운데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위한 협정문 서명식이 개최되었고, 우리나라는 3.81%의 지분율을 확보한 바 있다.


이에 앞서 2013년 9월 시진핑 중국 주석은 중앙·동남아시아 국가를 순방하면서 ‘일대일로(一帶一路)’즉,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대륙을 도로와 바닷길로 연결하겠다는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 건설계획을 공표하였다.


중국은 이를 위해 우선 4백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출연해 ‘실크로드 기금’을 만들어 일대일로 주변의 도로 및 기초시설 건설과 자원개발 및 산업·금융과 관련된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와 융자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아시아 지역의 경제성장과 경제개발 촉진 등을 목적으로 1966년 일본 주도로 설립된 아시아개발은행(Asian Development Bank,  ADB)의 지원활동에 더해 최근 일본정부는 메콩강 지역개발을 위해 7500억 엔의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2016년부터 5년간 1100억 달러 이상을 아시아 인프라시장에 투자하고, 이를 주로 집행하던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의 융자방식도 바꿔 고위험 인프라사업에도 지원하겠다고 밝히는 등 중국 주도의 AIIB 설립에 맞서 아시아 인프라시장에 대한 주도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도대체 왜 아시아의 두 맹주인 중국과 일본이 아시아 인프라 시장을 사이에 두고 이처럼 힘겨루기를 하는 것일까? 또한, 우리나라는 이들 사이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ADB 자료에 따르면, 2020년까지 아시아 지역의 인프라 개발 사업에 필요 재원은 총 8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대규모 인프라 개발 수요 폭증의 원인은 급격한 인구증가에도 기인하겠지만 무엇보다 첨단 IT 환경에 의한 정보의 급속한 확산이 자국의 재정상황과 무관하게 선진국 수준으로 인프라 환경이 개선되길 바라는 국민들의 요구 때문이라고 본다.


사실 중국이나 일본뿐 아니라 유럽의 주요국들까지도 아시아 인프라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직접적인 목적은 자국기업의 현지 진출 즉, 건설·엔지니어링·기자재 수출 등이고, 장기적으로는 진출국의 인프라 시스템을 자국 스펙으로 표준화시킴으로써 향후 추가적인 인프라 개발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지멘스는 흔히 IT기업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이미 해외건설 분야에 있어서도 우리 기업들과 경쟁기업군으로 분류해야 할 정도로 전 세계 에너지 및 인프라 시스템 구축에 있어 최강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이제 인프라 시장은 단순히 시설물을 설치하는 토목·건축·플랜트 공사가 아니라 첨단 IT산업 등과도 연계되어 있는 첨단 융복합 산업군들의 각축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아시아 인프라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취할 포지셔닝(positioning)이 무척 중요하며, 그런 맥락에서 AIIB참여는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아시아 인프라 시장에서 성공적인 프로젝트 수행을 위한 경험과 기술력, 그리고 공적개발원조(ODA)를 포함한 금융 조달능력을 지닌 역내 국가는 중국, 일본, 한국 정도이며, 지리적 제약을 지닌 서양보다 분명 유리한 측면이 있다.


진출국가 측면에서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수주실적이 부진했던 인도를 비롯한 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한국의 참여기회가 확대될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AIIB를 지렛대 삼아 낙후되어 있는 북한의 인프라 개발사업에 우회 진출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실제 프로젝트 수주까지는 적잖은 장벽들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은 여전히 국가 신용도가 취약하며, 일부 발전사업(IPP 등)을 제외하고는 도로, 철도, 상하수도사업 등 전통적인 인프라 사업에 대해서는 국내금융기관(주로 공적금융기관, 이하 ECA)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금융기관들도 일본 JBIC의 사례와 같이 해외 인프라 프로젝트에 대한 보다 전향적인 심사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기업의 입장에서도 AIIB 조달시장(Procurement)에 대한 참여도 중요하겠지만 대부분의 다자개발은행(MDB)들도 그러하듯 수원국과 프로젝트를 협의할 때 정부(Public Sector)보다는 민간부문(Private Sector)에서 주도하여 발굴되는 비중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특히 대규모 인프라사업의 경우 민관협력(PPP)방식으로 추진되는 사례가 훨씬 많을 것이기에 사업 발굴단계부터 프로젝트의 안정성이나 수익성 확보를 위해 MDB를 참여시키는 노력이 최우선적 필요하다.


또한 정부도 사전에 국내 ECA 혹은 EDCF 집행기관 등과 긴밀히 협의하여 AIIB와 협조융자(Co-financing) 시스템을 조기에 구축함으로써 우리기업들이 보다 능동적으로 인프라 개발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투데이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