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면기 동북아역사재단 정책기획실장

▲홍면기 동북아역사재단 정책기획실장
기원전 3세기경 진시황이 북방의 흉노족들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해 세웠다는 만리장성은 인류 역사상 만월대는 고려 태조가 송악(개성)에 도읍을 정하고 세운 궁궐로, 400여년 동안 고려의 왕들이 정무를 펼치던 정궁이다. 다른 궁궐이 보통 평지에 세워지는데 비해 만월대는 산세를 따라 몇 개의 단지를 이루며 조성된 것이 특징이다. 왕이 정사를 보던 회경전을 비롯한 다양한 건조물들이 있었으나 1361년(공민왕 10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소실된 이후 중건되지 못하고 지금은 그 흔적과 유물만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남과 북이 이 만월대 공동 발굴조사를 재개하기로 하고, 지난 3일 착공식을 가졌다. 2007년 이후 여섯 차례에 걸쳐 공동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바 있어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만월대 발굴조사 합의는 몇 가지 점에서 이전과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11월 말까지 6개월이라는 시간을 잡고 남북이  발굴조사를 추진하기로 했다는 점이 획기적이다. 그동안 발굴조사에서 가장 큰 애로로 여겨지던 시간적 제약을 털어내고, 사실상 지속적 조사가 가능한 토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발굴조사는 우리 국립문화재연구소와 북측의 조선중앙역사박물관 발굴단이 공동으로 수행하게 된다. 사업기간 동안 모두 80여 명의 우리 측 인원이 북한을 방문하게 되고, 15명 내외의 관계 전문가는 개성공단 내 숙소에서 만월대로 출퇴근하면서 상시적으로 발굴조사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고 한다. 남북한 학술교류 방식의 진화라는 측면에서의 의의도 작지 않은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쌍방은 서부 건축군 구역 중 왕실의 침전인 만령전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4000~7000㎡ 구역을 조사하고, 전시회와 학술회의를 위한 추가 협의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개성은 한반도의 중심부에 자리한, 분단을 상징하는 도시이다. 그러나 또한 개성은 남과 북이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고 통일을 지향해 나갈 역사문화적 자산을 간직하고 있는 고도이기도 하다. 고려 시대 개성은 당송시기 세계 무역의 중심이었던 명주(지금 중국 저장성의 닝보) 등과 비견되는 교역거점이며 국제도시였다. 지금의 개성 역시 남과 북을 이어주고, 강화-개성-인천 권역을 넘어 중국 등과의 경쟁과 협력을 추동해 나갈 수 있는 전략적 입지를 가지고 있다.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관점에서 이번 사업이 단순히 한 왕조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에 머물지 않는 ‘거대한’ 이유이다.


통일문제를 얘기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것이 이른바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이다. 그러나 최근 많은 학자들은 지정학을 권력정치의 프로파간다가 아닌 시간과 공간, 인간을 통합하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여기서 역사인식이 핵심적으로 중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남북이 힘을 합해 고려의 꿈과 역사를 일으켜 세우고 신뢰와 협력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구려의 위용을 자랑했던 평양의 안학궁까지를 복원해 낼 수 있다면 우리는 한국사의 새로운 광맥을 확인하며 미래 한반도의 지정학적 전망을 구체화해 나갈 수 있는 상상력과 지적자산을 갖게 될 것이다. 재개된 만월대 발굴조사가 역사공간을 보는 시야를 맑고 넓게 트고, 그동안 이룩해온 ‘작은 통일’을 다지고 재촉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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