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사는 이승훈(가명)씨는 지인과 함께 아파트 분양홍보관에 방문했다. 구경할 요량으로 홍보관에 들어선 이씨는 당시 분양 직원으로부터 “청약통장 없이 신축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솔깃했다. 그러나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으로 머뭇거리자 이를 눈치 챈 직원은 “돈이 부족하면 대출을 알선해주겠다”고 말했다. 이에 이씨는 동·호수 23층을 지정한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계약금 4000만원을 납입했다.
 
계약 체결 후 집에 돌아온 이씨는 계약서를 다시 살펴보던 중 ‘조합원 가입계약서’라는 명칭을 보고 당황했다. 일반 아파트 분양계약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지역주택조합 가입계약서였던 것이다. 대출을 돕겠다는 말만 듣고 휩쓸리듯 계약을 맺은 터라 계약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이에 이씨는 바로 다음날 다시 홍보관을 찾아 계약 취소를 요구했다. 그러나 지역주택조합 홍보관에서는 “임의탈퇴 시 납입한 4000만원 중 업무추진비 3000만원을 공제한 나머지 금액만 반환 가능하다”며 1000만원만 돌려받고 계약을 해지 할 것인지 물었다. 사실상 이씨의 탈퇴를 불허한 셈이다.
 
계약 하루 만에 3000만원을 잃을 위기에 놓인 이씨는 로펌을 통해 사건을 해결했다. 조합에서 강행법규를 위반한 사실을 법률전문가가 알아냈기 때문이다. 이씨는 지역주택조합 전담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내용증명을 발송, 이후 변호사와 조합 측의 협의가 진행됐고, 변호사의 강경대응에 조합 측은 이씨가 납입한 4000만원을 전액 환불해주기로 했다.
 
이씨의 법률 대리인이었던 법무법인 명경(서울)의 김재윤 대표변호사는 “당시 분양 직원은 의뢰인에게 지역주택조합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토지확보율, 조합원 모집율과 같은 사업 전반에 대한 설명을 일체 하지 않았고, 계약서에 필히 명시해야 하는 내용도 누락했다”며 “이는 주택법이 정한 고지의무를 위반한 묵시적 기망행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계약체결 당시 조합원 모집율이나 지주 작업 현황 등과 같은 내용에 대한 설명이 없었거나 허위로 광고해 기망 또는 착오가 있었다면 민법에 의해 지역주택조합원 가입 계약을 취소 또는 무효로 할 수 있다는 게 김재윤 변호사의 설명이다.
 
김재윤 변호사는 “일부 지역주택조합에서는 고의적으로 홍보현수막 등에 조합 명칭을 넣지 않고 일반 아파트 분양인 것처럼 광고하는 경우도 있어 결국 가입자들에게 주의를 당부하는 수밖에 없다”며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 조항들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등 신중하게 가입을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투데이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