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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이자 인장 공예 우수 숙련기술자, 지금은 캘리그래피를 더했습니다.[인터뷰] 씀과새김 여명 박민순 작가
강병수 기자 | 승인 2019.05.21 16:17

50년 노하우의 자부심,
전통 서예와 캘리그라피의 상생

서예와 인장 공예, 캘리그라피는
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

우리 말과 글의 중요성을 먼저 느껴야

 

 

"캘리그라피는 2004년, 한국국어원에 정식 단어로 등재됐어요. 새로운 미적 표현을 곁들인 조형 예술은 눈부시게 진화하고 있지만, 정작 아무나 가르치고 배우는 요즘이야말로 어려운 시기가 아닐까요?"

"언어와 글씨가 만나는 캘리그라피는 보는 사람에게 감동을 선사합니다. '자벌레가 땅을 재듯 쉬지 않고 나아가면 천 리를 간다.' 우리말을 사랑하는 마음과 끊임없는 노력이 훌륭한 글씨를 쓰기 위한 첫 단추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서예를 시작한 지 50년, 우리 문자를 사랑한 소년은 어느새 깊어진 주름으로 60세가 넘었음을 대변했다. "진정한 글씨는 종이가 아닌, 마음에 새겨야 한다." 박민순 작가는 지난 세월을 회상하며 우수에 젖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장 공예에서 캘리그라피까지 새로운 한 획을 긋기 위해 1년 365일을 쉬지 않는 그의 인생 글씨는 무엇일까?
 

씀과새김, 여명 박민순 작가


· 작가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서예가이자 인장 공예 우수 숙련기술자, 캘리그래퍼로 활동하고 있는 박민순 작가입니다. 서예가 집안에서 태어난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서예를 익혔고, 우리 문자를 사랑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웃음)

서예를 시작한 지는 50년, 인장 공예와 캘리그라피는 각각 22년, 10년이 흘렀습니다. 이 분야들은 창작을 통해 형태적인 아름다움을 이뤄내는 공통점이 있어요. 조형 예술로 글씨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매력을 크게 느꼈습니다.

 

· 서예를 시작한 이유가 집안의 영향이라고 하셨는데?

전라남도 진도가 고향입니다. 외가 식구들 가운데 장전 하남호 선생, 임농 하철경 선생 등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분들이 계셨어요. 그렇다 보니 붓을 잡는 게 당연했던 거죠. 취미처럼 시작한 서예를 50년째 놓지 못하고 있네요. (웃음)

 

· 인장 공예를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조형 미술을 좋아하기에 글씨로 표현할 수 있는 창작은 다 해보고 싶었습니다. 나무와 돌 같은 재료에 글과 무늬를 새기는 서각의 매력에 푹 빠진 거죠. 붓과 칼은 글씨를 쓰고 새기기 위한 도구에 불과해요. 마음속에 품은 나만의 우주를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애착이 컸습니다.

 

· 작가님의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기법보다는 조형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우수 숙련기술자로 선정됐을 때 썼던 책이 있어요. 한문 필서체 중, 가장 기본으로 발전된 서체가 '고인체'인데 무난한 서체로 어떤 이름이든 잘 어울린다는 장점이 있죠.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지만, '고인체'는 일본 서체입니다. 일제의 잔재인 거죠. 일제 강점기 당시 이 기술을 가르치며 획기적으로 발달 돼 왔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 한글로 과감히 지우고 싶었어요. 한글을 더 사랑하고, 더 아름답게 새기기 위한 기획을 한 겁니다.

 

·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자음을 16개씩 각기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를 다양하게 쓸 수 있는 거죠. 16개의 자음을 서로 엇갈리게 쓸 경우, 360개까지 표현이 가능해요. 여기에 10개의 모음을 조합하면 약 700가지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가령, 행복이라는 단어를 쓸 때 기자님이 30개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면 저는 170개까지 표현할 수 있는 겁니다. (웃음)
 

다양한 서체로 표현된 단어, '사랑'


박민순 작가의 공방 이름 '씀과새김'은 보이는 의미를 넘어 조형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그는 반듯반듯한 글씨체를 보며 새로운 서체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이를 캘리그라피에 적용했다. 2009년 대전 세이백화점 문화센터 수업을 시작으로 '씀과 새김'을 찾는 발길은 현재진행 중이다.

언어나 글자는 인간에게 내려준 가장 큰 선물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소통할 수 없다면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처럼 말하기의 중요성은 강조하지만, 글씨를 잘 써야 한다는 가르침은 그에 비해 덜 중요해졌다고 느낀다. 박민순 작가가 생각하는 잘 쓴 글씨가 주는 매력은 무엇일까?

 

· 글씨가 주는 매력은 무엇인지?

자신의 필요에 의해 글자를 쓰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기에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글씨를 쓰기 위해 우리는 행동해야 합니다. 공격수가 골을 넣기 위해 흘리는 땀방울만큼 시간과 노력을 들였을 때 더 우월하고 아름다운 글씨를 쓸 수 있는 거죠.

말은 입에서 나와 귀로 듣고 사라지잖아요? 하지만, 성경이 증명하듯 글씨는 역사를 보존하는 첫 단추라고 생각해요. 입에서 입으로 세기를 거듭했다면 내용의 통일성이 사라졌을 겁니다.

 

· 글씨를 잘 쓰기 위한 방법이 있나요?

사람마다 목소리가 다 다르죠? 구강의 크기, 치아의 생김새, 혀와 입술의 차이에 따라 음성이 달라져요. 마찬가지로 글씨도 심장 소리와 맥박에 맞춰 우리의 손이 움직입니다.

글씨는 곧 자세입니다.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흐트러진 마음을 가지고 붓을 잡는 날에는 생각대로 글씨를 쓰기 어렵더라고요. 잘못된 습관이 몸에 익기 전에 마음의 안정과 바른 자세로 인내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세가 나쁘면 원하는 글씨를 쓸 수 없으며, 건강에도 해가 될 수 있다. 글씨를 쓰는 자세는 그 사람의 자태이며 품격이다. 자태가 바르고 품격이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는 누구든 함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운동처럼 글씨도 마찬가지다. 곧고 바른 자세를 가진다면 좋은 글씨를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빠르게 습득할 수 있다. - 「내 마음의 표현 캘리그라피, 박민순 저」에서

 

· 작가로서 어려울 때가 있었는지?

최근 들어 많은 어려움을 느낍니다. 서예, 인장 공예 분야의 기술자들이 사라지고 있어요. 인장 공예의 경우 대전 협회에 모이는 인원이 불과 10명도 안 됩니다. 손수 작업하기보다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고 생계유지가 어렵기에 많이 그만두시더라고요.

 

· 그럼에도 지금의 분야를 추구하는 이유가 있다면?

50년이 넘게 해온 일을 하루아침에 그만두기 어려운 거고, 제가 좋아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쉽게 놓고 싶지 않습니다. 서예와 인장 공예를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없다는 현실이 아쉽지만, 이를 받아들이고 우리 문화를 후세에 전달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거, 자기의 신분을 증명하는 인장과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옥새를 소중히 여겼듯, 우리 것에 대한 관심과 배움이 지속됐으면 좋겠습니다.
 

"진정한 글씨는 종이가 아닌, 마음에 새겨야 한다."


다른 분야의 장인과 마찬가지로, 우리 문화가 사라져가는 아쉬움을 박민순 작가 역시 느끼고 있었다. 빠르게 변해 가는 현대 사회에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울림이 더욱 크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무엇이 작가님을 움직이게 하는가? 라는 물음에,

"글씨가 주는 힘"이라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종이에 담긴 글씨와 그 의미가 소명이자 신념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기에 글씨를 눈과 귀로 느끼고, 끊임없이 되새기며 감성을 건드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새로운 서체를 연구하기 위한 작가님만의 방법이 있는지?

일단 고민을 많이 해요.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상대방이 좋아할까?", "바람이 부는 순간을 어떻게 나타내야 할까?"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모양이나 움직임을 흉내낸 의성어, 의태어를 잘 활용할 수 있느냐가 창작의 시작이 되는 거죠.

재밌는 글씨를 창작해내기 위해 붓의 특성 역시 파악해야합니다. 붓마다 번짐과 굵기도 다르고, 붓을 잡는 사람에 따라 모양이 다 다르거든요. 앞서 언급한 '행복'이란 단어도 서로 부둥켜 앉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부부' 역시 서로 좋을 때는 가까이 있지만 토라지고 싸우고 나면 뒤돌아 서 있는 모습을 'ㅂ'에 담아 표현할 수 있는 겁니다.

언어와 똑같다고 생각해요. 강하게 말했다면 글씨체 역시 강하게 나타내고, 존경을 담은 말이라면 부드럽게 나타내는 겁니다.

 

· 가장 보람을 느끼실 때가 있다면?

제가 써드린 글씨에 감동하고 애지중지 여기시는 분들이 있어요. "내 이름이 이렇게 예뻤나?", "우리 집 가훈으로 삼아야겠다." 하시면서요. 그럴 때마다 저 역시 뿌듯합니다. "글씨를 쓰는 행동이 자부심이나 자존감까지 높여줄 수 있구나"를 느끼는 거죠. 앞으로도 타인의 이름과 존재, 소명의 가치를 함께 나누는 전도사가 되고 싶습니다.

 

· 앞으로의 꿈이 궁금하다.

앞서 말했듯, 지금은 제가 하는 일을 더욱 소중히 남기고 싶습니다. 작가로서 작품 세계도 더 넓히고 우리의 문화를 알리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가능하다면 이 분야에서 명장으로 인정받고 싶고요. (웃음)
 

캘리그래피로 표현한 필자 이름, 박민순 작가


"살아있을 때까지는 계속해야죠. 글을 쓰다 보면 마음도 평안해지고, 잘 써지지 않을 때도 있지만 저만의 희열도 있고, 타인이 잘 봐줬을 때 기쁨도 큽니다."

"붓을 잡지 못하는 날에는 몸살이 난다."고 말한 박민순 작가. 아름다운 서체로 글자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한번 익힌 글자와 언어는 나이가 들어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평생을 함께 하는 이 두 가지 재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요리할 것인가?

"행복은 성취의 기쁨과 창조적 노력이 주는 쾌감 속에 있다."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말이 떠오르는 시간이었다.

강병수 기자  dken93@too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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