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주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이기명 교수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현실만 보고 듣는다.'

"이는 환자와 보호자 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관점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한 말입니다. 의사로서 배신감을 느끼고 의심이 들 때도 있었지만 결국 사람을 이해하니 심한 갈등을 예방할 수 있게 되더군요."

"한국에서는 소고기가 비싸고 미국에서는 돼지고기가 웬만한 소고기보다 비싸요. 똑같은 고기인데 왜 한국에서는 소고기가 맛있고 미국에서는 돼지고기가 더 맛있을까요? 그건 사회의 가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해진 가치에 맞춰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음식,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게 중요한 거죠."

작은 도전과 호기심이 삶의 원동력이라고 말한 아주대학교병원 의사 이기명 교수는 다양한 길을 달릴 수 있는 자전거를 탈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한 잔의 아메리카노처럼 포근한 인상의 이기명 교수가 들려줄 이야기, 지금부터 들어보기로 한다.
 

아주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이기명 교수


· 교수님 소개 부탁드릴게요.

아주대학교병원 내과 의사 이기명입니다. 1997년도에 전문의를 취득하고 전역 후, 2000년도부터 근무하고 있으니 횟수로 20년이 됐네요. 내과에도 세부 전공이 많은데 소화기, 그 안에서도 위장관을 담당하고 있어요. 우리 몸에서 음식이 통과하는 길인 식도, 위, 소장, 대장에서 발생하는 질환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 우리 몸에 중요한 소화기 치료를 담당하시는군요. 더 자세히 설명해주신다면?

최근, 위장관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가 내시경 진단과 치료에요. 음식이 통과하는 길을 하나의 튜브라고 한다면 그 안을 따라 내시경이 들어갑니다. 내시경을 통해 위장관에 발생한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겁니다.

저는 주로, 치료 내시경을 담당합니다. 위장관에 암이 발생하면 과거에는 수술을 했습니다. 병이 생긴 튜브의 일부를 잘라내고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연결하죠. 조기 암이나 암의 직전 상태 즉, 전암 병변 상태에서 발견된다면 수술하지 않고도 내시경을 통해 치료가 가능해요. 튜브를 잘라내지 않고 연속성을 유지한 상태에서 치료를 할 수 있기에, 회복도 빠르고 치료 후 삶의 질 역시 높습니다.

 

· 여러 분야 중, 소화기 내과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현대인에게 발생하는 질환 중, 소화기 질환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내과 의사의 관심이 많은 분야에요. 처음 소화기 내시경을 배울 때는, 주로 진단에 국한된 시기였기에 치료의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2000년대 초반, 외국에서부터 내시경 치료를 위한 여러 가지 기술과 기구들이 개발되면서 치료에 날개를 달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 여러 교수님들의 배려 덕분에 운 좋게 외국에서 새로운 치료 방법을 먼저 익힐 수 있었고, 이를 토대로 소화기 질환의 치료 내시경 분야에서 매진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의사의 유년 시절은 어떤 모습일까? 이기명 교수 역시 자신이 모범생이었다고 말하며 멋쩍어했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진 않았지만, 책 읽기를 좋아한 모범생이었기에 의과대학에 입학할 기회가 주어졌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이 교수의 겸손함이 묻어났다.

스마트폰과 케이블 TV가 없던 어린 시절, 그가 책을 좋아했던 이유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글자의 조합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하는 책은 그에게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놀이터였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보다 상처를 치유하는 일을 하자"는 이 교수가 의과대학에 진학한 이유였다. 길고도 짧은 인생을 살며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그를 모범생으로 만들었을까? 삶을 영위하는데 좋은 직업이라는 장점도 있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 선한 영향을 주고 유익하게 만들 수 있는 매력이 크게 다가왔다고 한다.

 

· 의사가 된 이후, 교수님의 성장을 도와준 멘토가 있는지?

어떻게 보면 당연하지만 '땀과 노력, 시간을 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결과는 없다.' 저희 소화기 내과 원로이신 김진홍 선생님께 배운 가르침이에요. 인간적이면서도 굉장히 무서우신 분이었거든요. 내시경 시술에 들어가면 땀을 너무 많이 흘리고 탈수가 심해 몇 시간 동안 소변이 나오지 않은 경우도 있었죠. (웃음)

내시경 시술을 하다 보면 이상하게 안 될 때가 있어요. 선생님은 시술이 4~5시간이 걸리더라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포기하는 법이 없으셨습니다. 소화관 금속 스텐트 치료법도 선생님께서 새롭게 개척하신 영역이죠. 엄청난 땀과 노력, 시간 이 삼박자가 맞아야지 조그마한 발전이 이뤄진다고 봐요. 지금도 힘들거나 고민이 생길 때 가장 먼저 찾는 분이 김진홍 선생님이고 같은 분야에서 일할 수 있음에 행복합니다.

 

· 의료분야 종사자로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이 있다면?

(잠시 정적이 흐르고) 현실과 이상 가운데, 어떤 가치와 타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죠. 우리나라 의료현실을 보면 국민건강보험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해 의료수준이 정해져요. 최고의 치료보다는 정책적인 가이드라인이 존재합니다.

최선의 진단과 치료 방법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분명히 옳은 방향이었음에도 치료를 진행하면 삭감과 같은 결과가 나타나요. 대표적인 경우가 이국종 선생님이죠. 이국종 선생님이 있는 외상 외과를 '돈 먹는 하마'라고 표현하더라고요. 외상 외과에서 치료하는 방법이 옳고 사람을 살리기 위한 방법이지만, 치료를 진행하면 할수록 병원에서는 엄청난 손해가 발생하는 겁니다.

하지만 10년 전 과잉진료라고 비난받았던 치료법으로 석해균 선장님 같은, 많은 분을 살리면서 결국 옳은 방법임을 증명해 보였어요. 건강보험과 심평원의 심사 규정을 어기면 병원뿐만 아니라 의사 개인에게도 불이익이 옵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이죠. 타협만 계속하다 보면 방향성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내시경 시술 중인 이기명 교수 (아주대학교병원 제공)


끝나지 않는 팽팽한 줄다리기가 필자를 안타깝게 했다. 사람을 위한 가치가 다른 가치에 의해 좌절될 때,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이기명 교수는 재밌는 이야기 하나를 들려줬다. 환자는 "의사가 시키는 대로 행동해야지, 의사를 따라 살면 안 된다." 이게 무슨 말인가요? 라는 질문에 그는, 의사는 환자에게 술, 담배를 삼가고 규칙적 건강한 생활을 강조하지만, 정작 의사는 그렇게 행동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의사가 권하는 삶에 반(反)하는 언행 불일치가 나타나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의사는 수명이 짧다고 알려져 있다. 이 교수는 환자를 잘 치료하기 위한 근본으로 의사가 튼튼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지식이 풍부하고 건강한 의사에게 치료받았을 때 환자는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성이 중요한 의료 분야지만, 같은 일을 반복하며 생기는 몸의 부담이 의사를 극한직업으로 몰고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교수님만의 방법은?
 

등산과 자전거 타기를 좋아해요. 몸의 좌우와 상하체 불균형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매번 같은 근육과 관절을 사용하다 보니 불균형 해소가 가장 중요합니다. 등산한 지 10년이 넘었고 자전거는 작년부터 타기 시작했어요. 등산만 하다 보니 무릎이 안 좋아지더라고요. 뭐든지 다양하게 해보는 게 좋습니다. (웃음)


· 우문이지만 20년째, 매번 하는 시술임에도 긴장될 때가 있으신 지 궁금하다.

당연히 있죠. 위장관을 샌드위치라고 비유해보겠습니다. 샌드위치는 빵과 빵 사이에 잼이나 야채가 들어가죠. 조기암에 대한 내시경 치료를 쉽게 설명하면, 병이 생긴 샌드위치의 한쪽 빵을 칼로 잘라내는 거예요. 그런 다음, 병이 있는 부분인 빵 안쪽을 제거하는 겁니다. 남아있는 반쪽의 빵에서 새살이 돋아나야 하지만 이는 이론적인 내용입니다.

어떤 경우, 남은 반쪽의 빵이 종이처럼 얇고 투명할 때가 있어요. 이 때 자칫하면 쭉 찢어지고 천공이 생길 수 있기에 더욱 긴장하게 됩니다. 또한, 양쪽 빵이 달라붙어있는 경우에는 잘라내기 어렵고 출혈도 매우 심합니다. 샌드위치의 반대편 빵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으면 좋겠지만, 칼로 잘라보기 전에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가 생겨요.

 

· 의사라고 하면 '실패'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호탕하게 웃으며) 실패한 경험 많습니다. 의학이 발달하게 된 이유 역시 실패에서 비롯된 거예요. 기록에는 없지만, 많은 의사가 각기 다른 방향에서 무수히 시행착오를 겪었고, 이를 종합해 최선의 방책을 찾아낸 겁니다. 시행착오를 통한 발전을 위해 분산, 노력, 선택, 집중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언제나 제 선택이 최고는 아닐 수 있어요. 헛다리 짚을 때도 많았고요. 이러한 과정이 있어야지만 발전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직업 의사' 위기도 많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대부분의 경우 치료를 통해 좋은 결과가 나오지만, 최선을 다했음에도 결과가 나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질환이 있는 부분을 자르고, 육안과 현미경으로 완전히 치료했다고 판단했으나 몇 년 후 재발하는 병은 환자에게 더 깊은 상처를 줄 수 있기에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했다.


이기명 교수는 환자와의 관계에서 '4번의 설명'과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했다.

광고학에서는 관심있는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최소한 네 번의 광고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 교수 역시 시술 전 그림과 동영상으로, 동의서 작성과 회진 시 대화로 형태를 달리해 4번 이상 설명한다고 전했다.

"치료 후 좋지 않은 결과가 생길 때, 결과 자체보다 환자에게 받았던 배신감이 컸어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분들이 거짓말한 게 아니더라고요. 사람의 본성이자 특성인 겁니다." 의사도 사람의 특성을 이해하고 병을 치료할 때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한 이기명 교수


· 인터뷰를 하며 중간 중간 프로정신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어떤 행동이나 습관이 그러한 자세를 갖게 해주었나요?

모든 사람, 특히 의사에게는 스스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진단 기술의 발달로 환자들의 상태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정작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를 때가 많아요.

자신의 감정변화에 귀 기울이는 게 중요합니다. 내가 언제 우울해지고 부정적으로 변하는지 현재 나의 감정 상태를 안다면 많은 도움이 돼요. 삶의 근본은 바꿀 수 없지만, 후회를 줄이기 위해 내 안의 감정을 깨달으며 나를 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 20년 동안, 의사로 살아오며 이 직업을 선택하길 잘 했다, 느끼시는 보람은?

알코올 중독자 분들이 왜 그렇게 술을 마시는 지 기자님도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마음에 상처들이 많아서 그렇답니다. 질병의 원인을 질병 자체만으로 판단하면 안 되거든요. 우리나라 사회가 IMF 외환위기와 같은 여러 가지 비극을 이미 극복했다고 하지만, 아직 경제적 어려움과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회복도 오래 걸리고요.

의료는 병원에 오는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지만, 많은 부분이 사회에서 발생한 문제들과 연결돼 있는 겁니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좋은 영상, 강의를 환자들과 함께 보며 이야기하려고 해요. 진료실 밖 문제에 대해서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가치를 나누며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잖아요. 치료하지 못하는 부분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매치 메이킹'하는 역할을 할 때 가장 보람됩니다. 몹시 어려운 환자 1명도 중요하지만, 쉽게 치료할 수 있는 100명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마지막으로, 예비 의사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무보다 숲을 보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과거와 비교하면 스마트폰, 태블릿PC, 구글, 위키피디아 등 공부에 활용할 수 있는 도구들이 너무 많아졌거든요. 의과대학교 학생들의 교육량이 많지만, 본인 영역 바깥의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더불어, 전문성과 보편성을 함께 갖는다면 금상첨화죠. 보편성이 없는 전문성은 전문성을 꽃피우고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환자와의 관계를 위해, 인문학적인 소양도 공부하고 인생에 도움 되는 폭넓은 공부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인생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균형을 잡으려면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보조 바퀴를 뗀 채, 인생이라는 길을 힘차게 달리며 넘어져도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는 균형. 한 치 앞도 모르는 삶에 나를 지키기 위한 나만의 균형을 찾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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