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영위하면서 곡절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을까?
설사 평탄한 평행선 같은 삶을 산다면 과연 재미가 있을까?
아니 우리는 진정 그런 삶을 바라는 것인가?


우리 사회는 세 살때 부터 부모가 정해 놓은 철길을 따라 한치의 오차도 없이 달려가야 성공한 삶처럼 여기는 사람이 많다.

▲국회의원 전하진


흔한 유행어가 이를 반증한다.
좋은 대학에 가려면 할아버지의 경제력과 아버지의 무관심
그리고 엄마의 정보력이라 하지 않던가.


여기서 왜 대학을 가야하는지?
왜 그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지? 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오로지 명문대 딱지를 붙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내 인생의 상당한 시간을 투자하는 것인데
그것이 내 삶에 어떤 의미이고 어떤 가치를 제공해 줄 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없이
그저 막연하게 할아버지와 부모에 의해서 결정되어지는 것이라면
과연 자신이 있는 삶이라 말 할 수 있겠는가?


우리 사회는 너무 안정적인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무엇이 안정적이고 불안정한 것인지에 대한 개념조차 없어 보인다.
단적으로 안정된 직장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철창에 갇혀 제한된 공간에서 굶주릴 걱정도 없고 외부의 공격에도
안전한 동물원이 과연 동물들에게 안정되고 행복한 장소라고 할 수 있을까?


진정으로 삶의 의미를 느끼며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단지 경제적인 보상이나 파워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일을 한다면
그야말로 지옥과 뭐가 다르겠는가?


어떤 상황도 마음먹기에 따라 천당이 되기도 하고 지옥도 될 수 있다.
또한 인생은 항상 오름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그렇게
파란만장하게 살게 되는 것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그 굴곡의 시간을 여하히 아름다운 Story로 승화시킬 수 있느냐에
진정한 인생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필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고
마음을 제대로 다잡기 위해 마음의 근력이 필요한 것이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를 이겨내고 다시 튀어오르는 공처럼
일어날 수 있도록 회복탄력성 (Resilience)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우리는 몸의 근육을 만들기 위해 많은 돈과 시간을 쓰며 노력한다.
성형대국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얼굴이든 몸이든 상관없이 칼을 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마음의 근력이 쇠약하면 마치 바닷가 모래위에 성을 쌓는 것과 다름아니다.


몸의 근력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마음의 근력을 만드는 일이다.


마음의 근력을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첫 번째 운동은 바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다.


항상 자신에게 닥친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진정한 자신감이요
자신감을 가진 자가 자신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 한 때 한글과컴퓨터 대표를 지내며 언론에 엄청난 주목을 받았었고
또 갑작스럽게 큰 돈을 만지기도 했지만 갑작스러웠던 만큼 돈을 잃는 것도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고 심지어는 있는 것 마저도 다 날리고 말았다.


하루아침에 강남에 고급아파트도 날리고 월세 오피스텔로 이사를 가야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 이후에도 오랜 시간 채권자들에게 시달리기도 했고 투자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했다.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마음 먹는 순간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고 또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사실 시기와 질투, 불만 이런 것들은 비교 때문에 만들어지는 마음의 병이다.
내가 과거에 어떠했는데, 저 친구는 옛날에 나 보다 못했었는데 등등
지금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시기도 질투도 불만도 사라지게 된다.
비교하지 않으면 질투할 일도 시기할 일도 사라진다.
오로지 지금의 내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스트레스의 대부분을 날려버릴 수 있다.


이런 깔끔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면 우선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
빨리 포기하고 빨리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 시점에서 리셋이 이루어져
모든 것이 제로상태로 정렬된다.
마치 스타트라인에 선 육상선수들과 같은 모양이 된다
그리고 자신 원하는 곳으로 한발을 내디뎌 가면 되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하냐고?
그것을 훈련하고 그렇게 단련하여 마음의 근력을 쌓아가면 가능한 일이다.
꾸준히 기도하듯 항상 닥치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런 훈련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멘토가 필요하다.


미국에서 수십년간 진행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회복탄력성이 강한 사람들에 대한 조사에서 흥미로운 것들이 밝혀졌는데


결손가정이나 부모가 마약을 하거나 경제적으로도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들 중에


상당 수 가 예상을 깨고 미국의 그 또래 아이들의 평균보다 훨씬 앞서는 훌륭한 젊은이로 성장했고,


그 이유를 조사해 보니 그들에게는 그들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격려해 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꼭 부모님이 아니더라도 교사, 종교지도자, 친척 등 누군가가 그들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준 경우 훌륭하게 자랐다는 것이다.
학창시절에 망나니 짓을 하는 학생에게 학급 반장과 같은 중책을 맡기면 의외로 그 일을 잘 수행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 자기를 믿어준다는 것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는데 엄청난 힘이 된다는 점을 밝혀 낸 연구였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시련과 곤란한 시기가 닥친다.
문제는 오름과 내림을 반복하는 인생 중에 내림의 끝에서 다시금 차고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차고 오를 수 있는 힘 다시 말해 회복탄력성이 높아야 결국은 인생의 승리를 맛볼 수 있다.


그러므로 회복탄력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 자녀들이나 우리 스스로는 과연 어느 정도의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부모의 신뢰와 사랑이 지나쳐 강요가 되고 과보호가 되면 오히려 회복탄력성이 떨어지게 된다.

부모의 강요에 의해 성적 올리기 위한 기술만 발달하여 성적은 좋지만 마음의 근력이 약해 스스로 무기력해지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이 된다.


대체 우리나라 교육은 어떤 인재를 키우겠다는 것인지 정말 알 수가 없다.

영어 수학이 우리 인생에 있어 정말 그렇게 중요한가?

지금까지는 그랬다 치더라도 앞으로도 그러할 것인가?

정말 우리 교육당국은 그렇게 확신하고 있는 것인가?


고등학교의 목표가 SKY 대학에 몇 명을 입학시키는 것이라면
떨어진 나머지 학생들은 다 낙오자로 낙인찍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마치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다양한 꽃들을 하나의 틀에 구겨넣어 버리는

끔찍한 일이 자행되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어떤 모양을 하고 있든 간에 또한 어떤 색깔의 인간이던 간에 각자의 모습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모습그대로 이 사회가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않고 함께 살아가는데 따른 규칙과 제약이 있을 수 있다.
적어도 그 범주안에서만큼은 각자 '있는 그대로' 자신의 꿈과 끼를 추구하며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진정 국민행복시대로 나아가는 기본 철학이 아닐까 싶다.


이 간단한 주제에 동의한다면 이것을 위한 교육과 사회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


회복탄력성 다시 말해 마음의 근력을 강화하기 위한 학교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자존감을 가진 훌륭한 인격체로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훈련과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그러하지 못했다면 지금부터라도 서둘러 이같은 교육을 시켜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교육은 교과과정에서 별로 찾아 볼 수 가 없다.


A는 요리를 하는 동안이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면

대체 영어와 수학은 A에게 있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되물어 봐야 한다.


지금처럼 A가 영어와 수학을 못한다고 꾸지람을 듣고 남들보다 열등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낙인을 찍어야 하는 일은 더 이상 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학교가 저마다의 소질을 다 계발 해 주기는 어려울 지 모른다.
그렇지만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나와 다른 친구들은 각자 행복의 잣대가 다르며

그 어떤 것도 하나의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내가 느끼기에 가장 행복한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가진 자가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깨우치게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미래의 교육 아니겠는가.


앞으로는 가르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학습하게 될 것이다.

전 세계 우수한 대학들이 무료로 자신들의 강의를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고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지식은 얼마든지 습득할 수 있다.


따라서 선생님들의 역할이 가르치는 업무가 아니라 멘토의 역할을 해야 한다.

학생들을 신뢰하고 격려하고 도와주는 멘토로의 변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학교는 더불어 살아가는 필요한 사회적 규범과 도덕, 역사 등을 의무적으로 강조해 교육해야 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자신의 엘리먼트를 발견하게 도와주고 회복탄력성을 키워주어야 한다.

나머지 지식은 각자의 필요한 것들을 습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될 것이다.


이 같은 혁신에 대해 이 사회가 심각하게 토론하고 논의해서 우리 아이들의 피같은 시간을 미래를 위해 대비할 수 있도록 되찾아 주어야 한다.


행복은 주워담는 게 아니야


우리 삶에 있어 가진 것이라곤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몸뚱아리 하나가 전부였고
또한 돌아갈 때 그 몸뚱아리하나 자연에 반납하고 가면 된다.
살아있는 동안 게걸스럽게 뭔가를 주워담으려 애쓰겠지만 내 안에 담기는 것은 없다.


행복은 억지로 주워담는게 아니다.
내면으로부터 얼마든지 샘솟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은 이 행복의 무한한 내면의 샘물을 어떻게
샘솟게 할 것인지 그 방법을 가르쳐 주면 된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은 샘솟게 할 수 있기에 뭐가 있어야 행복하다는 이야기는 결단코 사실이 아니다.


성인이신 예수님도 부처님도 모든 것은 내려놓고 아무것도 없이 그 누구도 갖지 못한 행복과 사랑을 가지셨고
수 천년 동안 그 사랑을 나눠주고 계신다.
그리고 그렇게 살라고 주문하신다.


그런데 수 많은 종교인이 그 분들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뭔가를 주워담으려 한다면 이는 그 분들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물론 쉽지 않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가능한 일이고 그렇게 살 수 있게 조물주가 인류에게 내린 선물이다.


가진 것 없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행복을 샘솟게 할 방법을 모르다면 그것을 더 한탄해야 할 것이다.
뭔가를 아무리 게걸스럽게 주워담아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니까.


돈이 있고 없음에, 가진 것이 있고 없음에 상관없이
훨씬 자유스럽게 내 삶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 수 있다.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오로지 '있는 그대로' 나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내가 움직이고 싶은 곳으로 한발씩 내디뎌 가면 된다.


인생은 처음부터 설계된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돌탑 쌓듯 즐겁게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쌓아가는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를 잘 만든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는가.
어느 순간 쌓인 만큼의 돌탑이 그 순간의 내 모습이고 그렇게 쌓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회복탄력성은 영어나 수학보다 어떤 대학졸업장보다 중요한 힘이다.
이것을 우리 청년들이 단단히 가질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정말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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