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는 다시 거칠어지고, 세월호 사태가 언제 수습될 지는 아직 기약이 없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직접적인 피

▲우종민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해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처럼 슬픔을 느끼는 일반인과 학생 등 온 국민이 일종의 우울증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 상처받은 기억이 있다든지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는 분 중에는 애써 눌러놓았던 아픈 기억이 걷잡을 수 없이 돋아나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힘들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과거 불안증이나 우울증을 앓았거나 마음이 다소 약한 분들은 재발도 늘어나서 염려가 된다. 직접 피해자와 일반 국민의 치유에 중요한 점을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피해자에게 당분간 병명은 언급하지 말자

 

이번 사태로 인해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나 ‘생존자 증후군’이 일반인에게도 익숙해졌다. 그래서 마치 모든 피해자가 정신적 후유증을 앓을 것처럼 오해가 생기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가 지금 보이는 모든 증상은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일 뿐이다. 꽝 하고 충격을 받았으니 지금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자체가 특별한 병은 아니다. 이 시기가 지나면 서서히 자연적인 회복과정이 시작된다. ‘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은 망각’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은 치료라기 보다는 자연적인 회복 과정이 잘 이루어지도록 도와줄 시기이다. 주변에서 가급적 침묵을 지키면서 피해자들이 고통스런 기간을 버텨내면서 스스로 잘 추스러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1~2개월이 지나도 충격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기억이 더 자주 떠오른다면, 그 때에는 적극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치료를 받아야 한다. 괴로운 기억이 너무 굳어져 버리면 오랜 기간 고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집단 트라우마 예방하고 정신건강 유지해야

 

성격이 착하고 남에게 공감을 잘 하는 사람일수록 감정이입이 잘 된다. ‘슬픔을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고 하지만 너무 오래 감정이입을 하면 마치 본인이 직접 피해자인 것처럼 정신적 후유증을 겪기도 한다. 입맛이 없고 무기력해지며 불안하고 가슴이 먹먹해서 외출을 하거나 먼 곳에 가기 힘들며 개인적으로 겪었던 상처나 걱정이 재발하는 등의 증상이 대표적이다.

 

세월호 사건은 누구에게나 슬프고 원통한 사건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을 더 잘 도와드리고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잘 세우는 것이 살아있는 사람들의 책무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감정적으로 자기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하루종일 현장의 화면이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을 보면 누구든지 우울증이나 식욕저하, 불면증 등 2차 3차적 피해를 볼 수 있다. 문자보다 영상은 기억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생중계 TV 화면을 멀리 하고 각자 ‘지금’ ‘여기’에서 하고 있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정신건강 면에서 바람직하다. 뉴스 하나하나에 너무 분노하고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감정이입을 너무 강하게 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학교와 지역사회 현장에서의 적절한 심리치유 필요

 

학교에서는 수업이 재개되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심리지원인력이 교육기관과 협조하여 학생들을 돕고 있다. 학생들이 사망자의 추모나 애도를 위한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개별적으로 보도진이나 피해자 가족을 접촉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학생 뿐 아니라 교사들도 어서 학교로 복귀하여야 한다.

 

피해자들을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그들이 ‘지금’ ‘여기’ 겪고 있는 현실 문제를 먼저 도와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급적 상대가 먼저 말하도록 기다린다. 질문을 한다면, “어떤 부분을 도와드릴까요? 지금 무엇이 필요하세요?” 정도가 적당하다.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 현재의 안전과 안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몸이 아프거나 불편한 곳은 없으세요?” 이것은 자신을 잘 돌보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질문이다.

 

기본적으로 잘 먹고 물을 많이 마시고 충분히 쉬라고 권유해야 한다. 불면, 소화불량, 통증 등의 증상을 사망자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덮어두지 않도록 도와줘야 한다. 제2, 제3의 피해를 막기 위함이다. 피해야 할 말도 있다. 흔히 충고하는 견디거나 극복하라는 말을 피해야 한다. 책임 소재를 따지는 일은 나중으로 미루도록 한다. 자칫 자책감 때문에 더 괴로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라는 두 단어에 집중해야

 

고통받는 트라우마 피해자를 도우려면 우선 우리 자신이 건강하게 버텨야 한다. 흥분하기 보다는 차분하게 현실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에 힘을 모아야 한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할 일 중 하나는 트라우마 예방의 노하우를 쌓는 일이다. 선진국들은 추도식장에서 슬퍼하고 위로하는 데에서 끝내지 않았다. 차분하게 그러나 집요하게 트라우마 치료법과 국민적인 정신건강 해결책을 모색하였다.

 

미국은 9.11 테러 사태 이후에 어떤 사람들이 트라우마에 더 취약한지, 또 똑같은 사고를 겪어도 어떤 사람은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괜찮은데 그것을 좌우하는 요인은 무엇인지, 가장 효과적인 치료 방법은 어떤 것인지 광범위하게 조사를 하고 장기간 추적 관찰을 해서 예방과 치료법을 준비했다.

 

일본도 대지진과 쓰나미를 거치면서 정부와 각 지역사회, 학교 등 각 기관과 가정은 어떤 역할을 해야지 되는지,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지 지침을 만들어서 공유를 하는 등 실질적인 준비를 했다. 이런 합리적인 절차가 준비 됐을 때 국민이 비로소 정신적으로 안심할 수 있고 불필요한 후유증을 겪지 않아도 될 것이다

 

 

                                                                  2014.04.30 우종민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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